결핍에 대하여
결핍에 대하여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9.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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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연구실에서 바라보는 캠퍼스 풍경은 참 좋다. 연구실이 있는 건물은 널찍한 마당을 가지고 있고 그 마당을 지나 얕은 계단을 내려가면 보도와 차도가 이어진다. 계단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너비가 꽤 넓다. 계단은 건물 앞 화단의 수목 식재와 관련이 깊은데 화단의 수목은 계단을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심겨져 있다. 계단 양 끝에는 주목, 주목 옆에는 둥근향나무, 둥근 향나무 옆엔 라일락, 라일락 옆엔 철쭉, 철쭉 옆엔 수양단풍 등, 계단의 오른쪽에 식재된 나무만 봐도 계단 왼쪽에 심겨진 나무와 그 순서를 알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대칭적이다.

캠퍼스를 조성하고 나무를 심을 당시 정원가는 아마도 수종은 물론 수형이나 크기가 비슷한 나무를 골라 심었을 것이다. 정원가가 대칭의 정원 구조를 설계했다면 식재된 나무의 종류 뿐아니라 수형이나 크기도 대칭되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물이 준공된 것이 1984년, 나무가 심긴 지도 38년이 되었다. 한 세대를 30년 잡으니 한 세대를 훌쩍 넘는 긴 시간이 흐른 셈이다. 38년이 지난 지금 그 나무들은 어떻게 성장해 있을까?

계단 양편의 나무는 크기와 모양에서 이제 확연히 달라졌다. 계단 바로 옆 주목을 살펴보자. 오른편 주목의 키는 3미터가 넘으며 둘레도 3미터에 육박한다. 그러나 왼편 주목의 키는 2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정원전문가는 물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식물이 자라려면 빛, 물, 토양(양분)이 필수적이며 나무는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워서 식재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 세 환경요소 중 토양이나 빛 환경은 계단을 사이에 둔 정도의 거리 차로는 달라지기 어렵지만 물은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그 정도 거리를 두고도 충분히 다른 환경을 만든다.

그럼 풍성하게 자란 주목이 물이 풍요한 환경에서 자랐을까 아니면 쇠약하게 자란 주목이 물이 풍요한 환경에서 자랐을까? 대부분 이 질문을 받은 학생은 풍성하게 자란 나무가 풍요한 물 환경 속에서 컸을 것이라 대답한다.

그러나 오답! 식재된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나무가 물길에 심겨질 경우 뿌리가 물에 잠겨 잔뿌리를 낼 필요가 없음은 물론 물이 과하여 뿌리가 썩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이기에 환경을 바꾸기 어렵다. 물길이라고 스스로 뿌리를 뽑아 움직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반면 다소 메마른 땅에 심겨진 나무는 물을 찾아 뿌리를 계속 뻗어가게 되고 건조한 땅에서 잔뿌리를 풍성하게 발달시킨다. 뿌리가 번성한 나무의 잎은 무성하며, 뿌리와 잎의 활동이 활발한 나무의 생육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심긴 곳의 운명이 달랐던 두 그루의 나무를 통해 공평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지난 40여 년 운명대로 살았던 주목들을 보라. 풍성한 듯 보이는 환경 속에서 자란 주목은 약하고 여린 주목이 되었고, 척박해 보이는 환경에서는 강인한 주목으로 성장했다. 적절한 결핍은 발달의 원동력이며 스스로 발전하게 하는 내적 추진력이 된다. 물론 모든 결핍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족하거나 넘치는 환경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부족과 넘침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다.

코로나19가 여전한 최근 학교 현장은 결핍투성이일 것이다. 또 학교가 풍성한 환경을 갖추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의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가? 대응하고 준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교육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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