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코레아 후라(상)
안중근과 코레아 후라(상)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9.14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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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축일 선물로 받았습니다. 후배의 마음 씀이 고마워 열독했습니다. 일제의 침탈에 맥없이 무너지는 대한제국의 허약함과 그런 나라를 살리려고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민초들의 강인함을 김훈 특유의 간결하고 묵직한 필치로 풀어내 책장 넘김은 수월했지만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 나라의 후예라는 사실에 수치스러움과 분노가 일었고, 그런 민초들의 후예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움과 빚진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사실 안중근에 대해 아는 건 구한말 국권유린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한 위대한 대한국인이라는 일반상식 정도였습니다. 소설 `하얼빈'을 통해 안 의사의 생애와 거사에 얽힌 비화를 소상하게 알게 되었고 덤으로 구한말의 시대상황과 당시 한국천주교의 빛과 그늘 까지 알게 되었으니 감지덕지입니다.

하지만 정치 잘못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경제가 휘청거리면 어렵사리 선진국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살을 에는 경고가 행간에 숨어있어 섬뜩했습니다. 하여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천주교 신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책에 목차는 없었으나 크게 다섯 갈래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과 인물됨, 안중근의 거사 전 삶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애환, 구한말의 황실 동정과 민초들의 굴곡진 삶,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를 위시한 당시 한국천주교의 역할, 안 의사의 거사과정과 재판 상황으로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적 인물을 소설화 하면 위인전으로 흐리기 십상인데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그린 `칼의 노래'처럼 역사성과 문학성과 예술성이 잘 녹아있는 양서였습니다.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명문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 형상의 7개의 점이 있어 아버지 안태훈이 아명(兒名)을 응칠(應七)로 지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도는 기질이 있어 이를 눌러주려고 이름을 무거울 중(重)과 뿌리 근(根)으로 바꿉니다.

안중근은 16세 되던 1894년 김아려와 결혼했고 이듬해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에 입교하여 프랑스 출신 빌렘 신부에게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고 신식 학문을 배우고 사냥도 하며 호연지기를 키웁니다. 이 때 쌓은 사격술이 훗날 이또 사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1906년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후에 오학교로 개칭)를 세우고, 이어 남포의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 힘씁니다.

국운이 급격히 기울자 1907년 연해주로 가서 의병이 되었고 이듬해 전제덕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이 되어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일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후 노에프스키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의 탐방원으로 활약하며 충군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합니다.

그리 살다보니 김아려와 사이에서 2남(안분도, 준생) 1녀(현생)을 두었지만 자식 돌볼 겨를이 없었고 막내 준생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이또 히로부미를 암살한 죄로 32세에 형장의 이슬이 됩니다.

안 의사는 원래 동양의 자주평화를 부르짖던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부임해 제멋대로 고종 황제를 폐위시키고 순종을 황제로 세워 부하처럼 부릴 뿐만 아니라 십 수만의 양민을 파리 죽이듯 죽이고 대륙까지 침탈하므로 동양평화와 구국을 위해 이토를 처단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기회를 노리던 안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토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난관을 뚫고 하얼빈역 플렛폼 잠입에 성공한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열차에서 내린 이또를 소지한 권총으로 쏘아 쓰러트리고 우렁차게 `꼬레아 후라(대한제국 만세)'를 외칩니다. 안중근이 쏜 총소리와 안중근이 외친 `코레아 후라'가 잠든 평화를 깨웠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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