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와 야합은 다르다
페어플레이와 야합은 다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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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덕현<편집국장>

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단연 페어플레이와 화합이다. 물론 한나라당의경선이 끝나면서 불거진 것이다.

두패로 쫙 나뉘어 피튀기게 싸운 것은 경선 종료와 함께 과거사가 되었으니, 이젠 서로 손을 맞잡고 쎄쎄쎄 하자는 뜻이다.

맞는 얘기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이런 것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슨 선거가 됐건 끝난 다음엔 깨끗이 승복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체념하듯 오불관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편의적 발상의 자기 합리화만 내세우며 상대를 흠집내고 깎아내리는 게 관례였다.

이런면에서 한나라당 경선결과 발표 후 예상을 뒤엎고 단박에 패배를 인정하고 표표히 무대를 내려 온 박근혜의 처신은 두고 두고 회자될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안팎에서 이명박·박근혜 둘간의 조속한 화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있고, 언론도 이에 가세해 장단을 맞추기에 바쁘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약 박근혜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 마지못해 이명박에게 화해의 미소라도 보낸다면 그녀의 정치력은 오히려 끝이다. 천막당사에 배수진을 치고 당을 지켜낸 '여전사'가 아니라, 치기(稚氣)의 정치를 한다며 정적들로부터 공격받는 이른바 '수첩공주'로 영원히 낙인찍힐 수도 있다.

지난 1년간 사활을 건 이전투구를 벌인 상황에서 경선의 패자가 됐으면 말없이 승복하고 물러 앉으면 그만이다. 경선이 끝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당장 화해니 뭐니하며 호들갑들을 떠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조상까지 팔아가며 극한으로 대립한 처지에서 하루 아침에 개인의 신념과 소신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손을 탁탁 터는 것이 과연 선진 정치인지 오히려 묻고 싶다. 이는 야합이다. 이런 원칙없는 야합 때문에 국내 정치는 아직까지 60, 70년대의 아날로그를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페어플레이는 원칙과 순리, 규칙, 약속을 생명으로 한다. 어제까지 곡소리를 내며 싸운 사람들이 오늘 폭탄주 돌리며 서로 러브샷을 한다고 해서 페어플레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원칙과 순리가 철저하게 매몰된 더티플레이에 불과하다. 바로 야합인 것이다. 야합이 무엇인가. 정식으로 결혼의 절차를 밟지 않고 남녀가 정을 통하거나, 떳떳지 못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서로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추방의 대상이지, 결코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변에선 이를 강요한다. 설령 패자가 승자에게 붙더라도 이런 식으로 표변해서야 무슨 명분이 있겠나.

한나라당의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지역에서도 정우택 충북지사와 오장세 도의장의 화해를 주문하는 여론이 많아졌다. 지역 현안을 위해 둘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명분론에서다. 하지만 이것도 영 탐탁지치가 않다. 어차피 둘은 견제와 훈수의 관계이고 상황에 따라선 짝짝꿍도 하다가 또 서로 으르렁대야 정상이다. 이것이 쌍방간 예측가능한 처신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지역현안에 소홀히 한다면 이는 둘간의 문제가 아닌, 도민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할 문제다.

두 사람의 화해 여론이 명분없는 이유는 또 있다. 애초에 서로 심정적으로 갈라질 때도 둘은 금도를 상실했다. 인사 문제를 놓고 사적으로 나눈 얘기까지 기자들 앞에서 핏대를 올리며 발설한 전력 때문에 설령 다시 손을 잡는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다. 이는 솔직히 도민들에게 큰 실망감으로 다가 왔다. 지사와 의장으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작위적 화해는 오히려 일만 더 키우게 된다. 방법이 있다면 우선 도민들에게 사과부터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이대로를 외치다가 과연 누가 그르고 옳은지 나중에 도민들에게 표로써 판단을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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