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폐지도 절차와 논의가 필요하다
규정 폐지도 절차와 논의가 필요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2.09.12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시민사회단체가 추석을 앞두고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2020년부터 시행해왔던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을 폐기하는 안이 입법예고 됐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정부는 국무총리비서실 이름의 공문으로 각 부처와 위원회, 지방자치단체에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 폐지령안 의견 조회를 발송했다.

그러면서 폐지령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8일까지 회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일까지 회신이 없는 경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처리할 예정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공문에 적혀 있다.

해당 규정을 폐지하려는 이유로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목적으로 설치된 국무총리 소속의 시민사회위원회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국무총리비서실은 설명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짧은 검토의견 기간이 도마 위에 오르자 16일까지 늦추며 지난 7일 입법예고 했다.

시민사회와 정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숙의한 결과임에도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폐기될 최악의 사태에 직면한 셈이다. 규정 폐지안이 절차와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질 규정과 법령이라면 국민의 정부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추석을 앞두고 전광석화처럼 진행한 입법예고를 보면 규정을 폐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신속한 전산처리가 가능한 대한민국이라지만 각 부처와 위원회,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듣는 기간이 8일에 불과하다는 것은 폐지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더구나 당사자에 해당하는 시민사회 단체들과는 어떤 논의나 공론화도 없이 급하게 추진하는 모양새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문제가 있다면 시간을 갖고 논의하며 밟아야 할 절차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짧은 의견검토가 도마 위에 오르자 16일까지 의견제출 기일을 연장한 것으로 끝이다.

정부가 시민단체 활성화를 위한 사업 근거 조항인 이 규정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민단체들의 활동 중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활동도 적잖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정책도 추진력을 잃는 경우도 발생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반영하는 게 민주주의이자, 정책이기에 시민사회 활동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사회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들의 활동이라면 더더구나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많은 정책이 개발에 방점을 둔 한국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개발과 자본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다. 성장 일변도를 걸어오느라 놓쳤던 공동체 문화나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실천해온 시민 활동가들의 헌신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액셀이 있다면 완급을 조절하는 브레이크는 필수다.

물론 시민단체 운영에 고쳐나갈 부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과 현실 사이의 완충지대처럼 시민사회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다. 관변단체가 되어 쓰레기 줍기나 하고 봉사 활동이나 하기만을 원하는 시민사회가 아니라면 말이다.

규정 폐지와 함께 최근 감사원이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충돌도 예상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참여연대 등 18개 시민단체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와의 소통·협력 대신 길들이기에 나섰다”며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폐지령안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갈등이 갈등을 낳는 작금의 한국정치 현실을 정부와 정치권이 깊이 각성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