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9.0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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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어른이 되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줄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취직도 하고 돈도 벌고 집도 장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깨물고 살아도 손에 쥔 돈은 없고 갈 곳은 많으나 오라는 곳이 없으니 일자리 찾기도 쉽지 않다. 자고 나면 `억, 억'오르는 집값에 늘어나는 건 빚과 한숨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동구 밖에서 기다릴 부모 생각에 한달음에 귀성열차에 올랐다.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풍요롭던 시절, 그땐 그랬다. 요즘은 마음은 무겁고 통장은 가난하니 추석 명절도 달갑지 않다.

취업준비생들은 직장이 없어서, 미혼자는 결혼을 못해서, 직장인은 먹고살기 바빠서, 학생은 시험 때문에, 은퇴자는 경제활동을 안 한다는 자책감에 고향을 찾지 않는다. 저마다의 이유로 고향을 찾는 발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누구나 다 풍요로울 것 같은 명절에도 누군가에겐 쉼이고 또 누군가에겐 사치로 여겨진다.

추석을 겨냥해 유명호텔들은 추캉스족(추석+바캉스)을 겨냥해 특별 상품을 내놓았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은 추석을 맞아 오는 9일부터 12일까지 `테라스' 뷔페를 준비했다.

이 호텔은 송편은 물론 각종 전, 소갈비찜, 떡갈비, 보리굴비, 약과와 곶감 등 추석 대표 음식을 뷔페에 내놓을 예정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웨스틴 조선 부산에서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추석을 즐길 수 있도록 오는 13일까지 `보름달 패키지'를 마련했다.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도 추캉스족을 위한`어텀 인 문라이트' 패키지를,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추캉스를 즐기러 호텔을 찾는 가족 단위 고객을 대상으로 가을 운동회를 연다.

반면에 치솟는 물가와 가벼워진 지갑으로 연휴기간에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일명 쉼포족(쉼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최근 성인 15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1.1%가 추석 연휴에 알바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추석 기간 알바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단기로 용돈을 벌기 위해서(42.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알바 급여 사용처와 관련해서는 생활비(56.8%), 저축(42.2%) 순으로 나타났다. 중고 거래사이트인 당근마켓의 `명절알바' 게시글이 한 주만에 38% 가량 증가할 정도다.

보름달도 누구는 호텔에서 바라보는데, 누구는 아르바이트로를 하느라 허리 한번 펴지 못할 터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는 사람이 그리워서다.

기댈 곳 없는 도시에서 우리는 밤낮없이 일한다. 동물의 세계보다 치열한 삶 속에서 사람 냄새조차 떠올릴 겨를이 없다.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모두 경쟁자인 사회에서 그나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품을 내어주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에선 대가족이 흔했고 당연했다. 길 가다가도 친척을 만나고 친구와 해후한다. 대문을 열고 대뜸 들어가도 끼니 걱정을 해준다.

지금은 어떤가? 나홀로 족이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1인 가구와 경제(이코노미)를 합친 일코노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은 연휴기간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공(혼자 공연보기), 혼행(혼자 여행가기)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고향에서 보름달을 보면 어떨까? 부모는 직장이 없어도, 결혼을 못해도, 가진 게 없어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절을 애타게 기다린다.

사람이 그리운 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주름진 부모 얼굴에 간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추석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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