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고장 제천, 척사와 개화의 만남
특별한 고장 제천, 척사와 개화의 만남
  •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 승인 2022.08.2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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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충북 제천은 신라시대에 `내제군'이라 하였고, 고구려 때는 `내토군'으로 불렸다. 고려 건국 후에는 `제주'라 불렸고, 고려 현종 9년에 `제주군'과 `청풍현'으로 개편했다. 이후 조선시대에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불리다 1940년대에`제천현'이 `제천읍'으로 승격했다. 1980년에 `제천시'가 되고, 1995년도에 제천시와 제원군이 통합되어 현재 제천시로 되었다.

제천은 특별한 고장이다. 왜냐하면 한말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두 세력이 한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력이 개화를 상징하는 서양의 천주교이고, 또 하나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위정척사의 의병이다. 유인석을 비롯한 의병장들이 함께 창의를 모의하고 추진했던 `자양영당'과 천주교의 성지 `배론 성지'가 바로 이곳 제천에 있다.

제천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고장'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역사상 의병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봉양의 자양영당에서 의암 유인석선생의 지도로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1905년 외교권이 박탈되는 을사늑약이 으로 을사의병이 일어났다. 제천 출신인 의당 박세화 선생은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일제의 만행에 비분강개하여 주자 영정을 모시고 덕산면 억수리 불억이 계곡으로 들어와 뜻있는 지사들을 양성한 학자였다. 선생은 을사조약 후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청풍에서 왜군과 교전 중 붙잡히기도 했다. 이후 모든 활동을 접고 칩거하던 선생은 일제에 의해 경술국치를 당하자 모든 음식을 거절했고, 단식 23일 만에 순국했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다. 이를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일제는 정미7조약을 체결해 군대해산까지 단행했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여 본격적인 항일의병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의병을 정미의병이라 부른다. 국내 의병사에 한 획을 그었던 제천의병도 정미의병 당시 이강년, 민긍호 의병장 등이 연합한 의병연합군이 제천 천남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일제는 보복으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제천시내를 방화하고 파괴하여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제천시민 전체가 의병으로 간주되어 일제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이다.

`배론'은 1791년 신해박해 이후 충청도 남부에서 피신해 온 신자들이 옹기점을 운영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부르게 된 이름이었다. 그 후 박해가 끝나고 다시 이곳에 돌아온 신자들은 1890년대에 와서`사학(邪學)쟁이들의 옹기점'이라는 기억 때문에 포교 활동에 지장을 받을까 염려해 마을 이름을 바꾸어 주도록 관계 당국에 요청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구학리 배론'으로 불리게 되었다. `배론'이란 명칭은 이곳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바닥처럼 깊고 길게 뻗어 있다는 데서 붙여졌다.

배론이 천주교의 성지로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 복음사가 한국 천주교회와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는 점이고 다른 사적지와는 달리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들을 함께 간직해 온 곳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장 일찍 교우촌이 형성된 곳이요, 유명한 황사영(알렉시오)의 `백서(帛書)'가 탄생한 곳이며,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성 요셉 신학교'가 있던 곳이다. 또 최양업 신부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여러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순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박해와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순교자는 이 땅을 죄악과 악습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했다. 지배와 피지배의 굴레 속에서 서민에게 희망과 소망을 심어준 그들의 죽음은 현재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라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세계사의 유래가 없는 `의병'의 존재는 이후 `독립운동정신'으로`민주시민정신'으로 계승되어 우리 역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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