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빠진 황제
배꼽 빠진 황제
  •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2.08.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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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사서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사서

 

지난 7월 시골 도서관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작은 도서관이라 소속 직원 정원도 적고, 업무도 한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 새 책을 구입·정리하고, 독서문화행사, 평생 교육프로그램 운영 및 학교도서관 지원 사업까지 몇 안 되는 직원들이 도서관 모든 일을 처리한다.
많은 업무 중 가장 반가운 일은 사무실로 월 2번씩 들어오는 신간 도서를 만나는 일이다. 묶인 책이 들어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문 앞까지 냉큼 달려나가는 일은 사서로서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새 책 표지를 한 번씩 훑어보며 어떤 내용의 책인지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먼저 읽어볼 기회를 얻는 건 도서관에서 일하는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무실 한쪽 북 트럭에 가득 담겨 있는 책은 `책 꾸러미 사업' 도서이다. 도서관 `책 꾸러미 사업'은 희망 학급, 혹은 개인에게 주제별 책 꾸러미를 대출해주고, 더불어 책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독서 체험 키트를 제공하는 사업인데 택배 배송으로 학교로 배달된다.
교과 연계 도서로 구성되어 있어 지역 학교, 학생들에게 호응이 좋은 사업이다. 그중 키가 큰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배꼽 빠진 황제'는 세로로 긴 판형의 책이다. 그림 색채는 밝고 화려하다. 표지 그림은 아주 커다란 궁전 앞에 아주 작은 황제를 그려 넣어 크고 힘센 나라를 표현하였다.
크고 힘센 나라의 황제는 매주 화요일 궁전 뜰에서 작은 나라 왕들을 맞이하는 행사를 연다. 작은 나라 왕들은 각가지 보물을 황제에게 선물한다.
어느 날, 발이 세 개 달린 특이한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처음엔 시큰둥하였던 황제는 특이한 상자의 매력에 흠뻑 빠져 나랏일은 뒷전으로 하고 특이한 상자를 만지작거리느라 시간을 보낸다. 나랏일을 의논하는 중요한 자리에서도 말이다.
참지 못한 신하와 백성은 폭동을 일으키고 황제는 흐릿한 사진 한 장을 남겨둔 채 불행한 황제가 되었다는 이야기.
짧은 그림책은 신문명이 주는 신기하고 현란한 재미에 빠져 소중한 것은 놓치고 있는 현대인에게 주는 경고는 아닐까 생각한다.
재미있는 일에만 빠져 바보같이 행동하다 보면 중요한 일은 놓치기도 하고, 다가오는 위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당장 즐겁고 재미난 일에만 몰입하지 말고 참으며 절제하라는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갖추라고 충고하는 가벼운 그림책이다.
근무지를 새로 옮기고 업무가 바뀌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의 즐거움을 쫓느라 중요한 일은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두 달여간 내 행동을 되짚어보며 그림책을 천천히 읽고 또 읽어보았다.
앞으로 괴산에서 지내는 동안 배꼽 빠진 황제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지혜로운 생각과 현명한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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