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고래 이야기
우영우의 고래 이야기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8.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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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몰아서 봤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영우는 천재지만 자폐가 있다. 자폐란 변화, 곧 다름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이다. 우영우는 김밥을 좋아한다. 김밥 안에 들어 있는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돌발적인 맛이 출현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영우는 회전문 통과를 어려워한다. 회전문은 공간의 안과 밖이 회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이다. 일반적인 문은 공간의 안과 밖이 서로 분리되어 있어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지만 회전문은 그런 준비기간을 주지 않는다.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우영우와 같은 자폐인은 적응하기 어렵다. 우영우는 타인과의 접촉, 곧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도 어려워한다. 악수를 청하면 손끝만 살짝 잡는다거나 사랑도 단계마다 자문을 받거나 코치를 받으면서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가장 어려워한다. 우영우는 타자와의 통로가 닫혀 있거나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열려 있다.

우영우는 이상하다. 자신의 법정에서 남의 말을 끊는 걸 금지하는 판사가 친구 변호사의 말 도중에 치고 들어오자 재판장님이 남의 말을 끊었다는 걸 되바라지게 지적해준다. 의처증 환자가 뭐라고 욕을 하냐고 묻자 `이 육시랄 지랄 염병을 떨다 뒈져버릴 재수 없는 호로 새끼야'라고 했다고 하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되뇌인다. 변호사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셨으면서 아직도 손해가 어떻게 나뉘는지 모르느냐고 상사를 나무라고, 첫 키스 후 `키스를 하면 원래 이렇게 이빨이 서로 부딪힙니까?'를 묻는다. 일상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그래서 이상하게 보인다.

우영우는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여 해결책을 찾아낸다. 다리미로 때려서 남편을 숨지게 한 아내를 변호하면서 사망자가 다리미에 맞아서 사망한 게 아니라 원래 지병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을 찾아낸다. 황당한 발상을 가진 어린이해방군 총사령관이 망상장애환자임을 밝히기보다는 피고인의 사상(思想) 자체를 변호하여 사회사상가로 만들기도 한다. 자폐아 동생이 형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사실은 형의 자살을 말리려다 생긴 사건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도청직원의 농간으로 마을의 팽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될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살기 좋은 마을 한가운데로 도로가 관통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걸 밝혀내기도 한다.

우영우가 이렇게 돌파구를 찾아낼 때는 언제나 고래가 등장한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거나 하늘을 나는 고래가 등장하여 우영우에게 길을 알려준다. 고래는 사람들이 잊고 사는 마음의 고향이다. 우영우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매여 잊고 사는 원초적인 마음의 고향에 항상 열려 있다. 우영우는 사람들이 닫아놓은 마음 깊은 곳에 통로를 열어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어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사람들은 인간들과의 통로를 열어놓고 산다. 그래서 사회에서 그들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 있는 자신들의 고향에 대해서는 문을 닫고 산다. 그래서 그들은 발상의 전환이 되지 않는다. 우영우는 세상의 타자에 대해서는 문을 닫고 있으나 들어가 앉아 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에 대해 문을 열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롭다. 인간관계에 치이며 쉼터로의 문을 닫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우영우는 끊임없이 고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사람들은 우영우의 고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으며 그녀에게 `고래이야기 금지'를 외친다.

타자와의 삶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우영우는 외친다.“당신들의 마음 가운데 당신들의 삶에 활력을 주는 쉼터가 있어요.”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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