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사라진다
고향이 사라진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8.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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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기댈 언덕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위로받고 싶을 때, 세상이 나를 속였다고 절망할 때 떠오르고 돌아가고 싶은 둥지. 바로 고향이다. 한글을 모르던 유년 시절에도`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며 흥얼거렸던 그 고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지용 시인도 실개천이 흐르던 옥천이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다고 읊지 않았던가. 고향은 말 그대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이자 숨 쉴 수 있는 탈출구다.

지방은 사라지고 수도권만 존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럴 경우 고향이 어디냐, 출신 학교는 어느 지역에 있느냐, 모교는 어디냐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학생도 없고, 청년도 없고, 학교도 사라지는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는 데 수도권은 폭발을 걱정한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수도권·비수도권 간 발전격차와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년간의 균형발전정책 추진에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를 묶은 수도권은 우리나라 전체 국토의 12.1%에 불과하지만 총인구의 절반 이상인 50.3%가 거주하고 있다. 또한 청년(20~39세) 인구의 55.0%, 취업자 수 50.5%, 사업체 수 47.0%, 1000대 기업 86.9%, 신용카드 사용액 75.6%가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2000년도만 해도 53.7%로 수도권보다 7.4%p 높았다. 그러나 2019년 처음으로 역전 현상이 벌어져 수도권이 50.1%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역 인구가 감소하는 요인으로 `일자리 부족'(39.9%)이 1위에 꼽혔다. 이어 문화·복지·편의시설 열악(16.2%), 교육 환경 열악(13.0%) 순으로 나타났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겠다며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정부출연금 1조원(올해는 7500억)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지원한다. 이 기금은 모든 인구감소지역과 관심지역에 빠짐없이 배분되며 지방소멸이나 인구감소 위기 대응에 활용할 수 있다. 내년까지 인구감소지역 89곳에 최소 11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충북의 경우 인구감소지역에 괴산군, 단양군, 보은군, 영동군, 옥천군, 제천시 등 6곳이, 충남에서는 공주시, 금산군, 논산시, 보령시, 부여군, 서천군, 예산군, 청양군, 태안군 등 9곳이 각각 지정됐다.

문제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도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지역 간 삶의 질 격차'를 주제로 발간한`균형발전 모니터링&이슈 Brief'자료를 보면 수도권과 지방에 사는 사람의 삶의 질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기대수명은 서울이 84.8년인 반면 충북은 82.6년으로 2.2년 낮다. 종합병원을 가려 해도 서울은 3분 걸리는 데 충북에서는 27분 소요되고 출산을 하려 해도 산부인과를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보육기관을 가려 해도 서울에서는 걸어서 16분 걸리지만 충북에서는 62분이 가야하고 도서관을 가려 해도 서울은 도보로 16분인 반면 충북에서는 90분이 걸려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수도권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받고, 수도권으로 가야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현실에서 근본적 원인을 개선하지 않은 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예산은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최근 대통령실 조직개편으로 임명된 이관섭 신임 정책기획수석은“나라의 큰 결정을 하거나 작은 결정을 할 때도 작은 생선을 구울 때처럼 섬세하고 신중한 자세로 정책들을 돌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 역시 정부가 작은 생선 구울 때처럼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향, 귀성객, 귀성열차라는 단어도 사라질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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