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뜨개질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8.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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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오래된 사진을 보고 있다. 연년생 두 아들이 네다섯 살 무렵 모습이다.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은 큰 아이가 활짝 웃고 있고 개구쟁이 작은 아이는 사진 속에서도 장난기가 묻어난다. 그 때쯤 우리 부부의 사진을 보니 이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머리 모습이나 옷차림이 촌스러워 보여도 얼굴에는 풋풋한 젊음을 느낄 수 있다.

힘든 시기였다. 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낳아 좌충우돌 부모역할을 할 때 이다. 지금처럼 어린이 집이나 아이를 돌봐 주는 곳이 많지 않았다. 연년생 두 아이를 종일 돌보는 일은 힘에 부쳐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소심한 성격에 겁도 많았고 근심도 많았다. 무엇보다 사내아이 둘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활발하게 온 동네를 누비며 놀던 아이들이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온 세상이 잠든 것 같고 마냥 평화로웠다.

짧은 시간이라도 뭔가 탈출구를 갈망 했는지 모르겠다. 옆집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엄마가 뜨개질 하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기도 바쁜데 부업이 하고 싶었다. 뜨개바늘과 실을 잡고 앉으면 조금씩이나마 결과물이 눈에 보이니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 돌보느라 얽매인 듯이 옴짝 달싹 못하는 생활에서 오는 압박감도 한 코 한 코 뜨개질을 하며 실이 풀리듯 마음이 편안 해 졌다.

그 부업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온전히 아이들에게 매달리고 짬짬이 살림을 해야 하는데 놀이하다 잠깐 집에 들어온 아이처럼 줄곧 뜨개질에 마음이 갔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니 처음엔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뜨개바늘을 들었으나 차츰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어 스스로 안 될 일이라고 결단을 내렸다.

잠시 한 눈 팔던 마음을 정리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손이 덜 가면 그때 다시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부업이라지만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그저 뭔가 결혼 후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이라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부업에서 손을 떼고 아쉬운 맘에 아이들 옷을 하나 둘 뜨게 되었다. 큰아이에겐 민트색, 작은아이는 노란색 티셔츠를 떠서 입혔다. 지금 그 옷을 볼 수 없어도 한 올 한 올 짜여 진 무늬나 둥근 라운드 티셔츠를 완성하여 입혔을 때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다른 어떤 옷을 입혔을 때보다도 내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을 사진을 보며 다시 느껴본다.

그 때 이후로 뜨개질을 할 기회는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 때 잠깐 맛보았던 성취감이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뜨개질을 하다보면 한 코라도 허튼 게 없지 않던가. 실이 조금이라도 모자라거나 부실하면 떠 놓은 곳이 어떻게든 표가 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쩌면 한 올 한 올 생生 이라는 옷을 뜨개질 하고 있지 않을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옷이지만 뜨개바늘과 실이 성실히 제 몫을 하려고 애쓴 것 같다. 뭔가 조금은 부족하여 마음에 흡족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연연하지 않으련다. 부족함도 나의 본 모습이 아닐까 한다. 사진 속으로의 시간 여행에 마음이 흥건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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