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승인 2022.08.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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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유소년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겨주시던 시골집 등. 충북을 대표하는 시인 정지용(1902년생)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27년 `향수'라는 시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는 곳,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은 어디였을까? 자신이 자란 옥천읍 하계리(현재의 구읍)이었을까? 아니면 선친 대까지 연일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옥천읍 수북리 화계마을(이곳은 금강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현재 일부 지점은 대청호 건립과 함께 수몰되었다.)이었을까?

사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 어딘지는 중요치 않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9년 유학생활을 끝마친 정지용은 고국으로 돌아와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던 고향을 찾아갔다.

그와 달리 충북에는 수많은 실향민들이 살고 있다. 1980년 준공된 대청댐과 1985년 준공된 충주댐 때문이다. 대청댐 건설로 인해선 청주 상당구, 보은군, 옥천군과 대전 동구·대덕구 지역에 살고 있던 4075세대 2만6178명이 고향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또한 충주댐 건설로 충주, 제천, 단양군의 7105세대 3만8663명의 고향이 물속에 잠겼다.

수몰 당시 유소년이었거나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제 5~60대가 되어 그 시절의 고향집과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 골목골목으로 이어지는 돌담, 학교 곳곳에 오르내렸던 계단 등을 꿈속에서만 만나고 있다. 가끔 가뭄이 극심하게 들어 댐의 수위가 낮아지기라도 하면 뭍으로 드러난 고향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관광 상품까지 만들어 질 정도로 이들에게 고향은 꿈의 바다 호수 속에 잠긴 `꿈속에만 갈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실향민들에게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을 찾아줄 방법이 없는 것인가? 1985년 충주댐 건설 당시 수몰지역의 문화유적을 분야별로 조사한 보고서가 만들어졌지만, 수몰민의 삶과 이야기와 전설, 민담 등을 다룬 생활민속 분야는 매우 간략한 형태로 작성되었다. 그나마 2001년에 『충주댐수몰마을사』가 발간되었으나 수몰민의 명단, 마을의 지명, 연혁 등 간단한 내용만 담고 있어 수몰민들의 기억을 담아 마을을 재현해 낸 구체적인 기록은 없는 상태이다. 우선적으로 그들의 기억과 사진이나 갖가지 자료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엮어 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단양팔경 중 하나이자 제천을 대표하는 명승지인 옥순봉이 위치한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내동 마을에 거주하시는 올해로 86세 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충주댐으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기 전 옥순봉 앞 모래사장에서 놀았던 기억과 지금은 청풍호 물속에 잠겨 볼 수 없게 된 퇴계 이황이 옥순봉에 새긴 것으로 전해지는 『단구동문(丹丘洞門)』 암각자의 구체적인 위치 등을 알게 되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세월은 수십 년이지만, 아직도 기억 속엔 옛 시절의 모습이 마치 어제 본 그대로 구체적으로 살아있었다.

AR·VR 등 첨단IT기술을 이용해 수몰지역의 옛 모습을 되살릴 순 있겠지만 그에 앞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다. 수몰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마을의 모습과 민담, 설화, 생활관습, 민간신앙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여 이야기 자원으로 가공해 낼 필요가 있다.

충북은 최근 `꿈의 바다'인 호수를 통해 충북을 새롭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꿈의 바다'가 `꿈엔들 잊혀지지 않는 누군가의 고향'을 삼켜버렸다면, 그 꿈을 되찾아 주는 일부터 해야지 않을까 싶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들 이야말로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로 가는 마중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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