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큐레이터
멋쟁이 큐레이터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8.1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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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안녕하세요?” 한참 개인전 디스플레이 작업을 하는데 전시실로 불쑥 들어온 여성 한 분이 멈칫멈칫 인사말을 건넨다.
“선생님 저 기억하셔요? 예술고 제자인데….” 작품설치로 정신이 없던 차에 멍~ 하고 한참을 바라본 후에야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알지! 한국화 전공한….” 그제야 멈칫한 표정이 펴지면서 제자는 환하게 웃는다.
“선생님 개인전 하는 거 알고, 이왕이면 같이하고 싶어 바로 옆 전시실에 대관을 잡았어요~ 괜찮죠?” “그래? 정말 반갑다.” 작품설치가 늦어지는 바람에 반가운 인사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첫날은 각자 작품정리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유 작가(제자)는 전시하는 동안 수시로 내 전시실을 들락거렸다. 음료수를 들고 오기도 하고, 무료하다며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유 작가의 학창 시절 이야기로 늘 심심하지 않았다. “선생님 제 작품 별로지 않아요? 너무 상업적이죠?” 녀석이 불쑥 작품 이야기를 던진다. “응? 글쎄?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건데, 상업적인 건 뭐고, 별로인 건 뭘까? 내 생각엔 누가 끝까지 작가로 살아남아 자신만의 색깔을 찾느냐! 그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리고 나는 유 작가님이 지금 나와 같이 개인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특하고, 감사해~”
전시장엔 유 작가 본인뿐만 아니고 유 작가의 아버님도 딸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전시 기간 내내 내 전시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세미 정장에 여름 중절모를 멋스럽게 눌러쓰고 늘 반갑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낯가림도 없으시고 성격이 워낙 쾌활하실뿐더러 미술작품에 대한 궁금증도 많으시다.
또 작품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적극적이다 보니 다양한 작품을 찾아보시기도 한다. 전시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내 작품 설명을 몇 번 귀동냥 하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관람객들에게 직접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중에 살짝 막히면 “그렇죠?” 하고 물으시고는 흘낏 내 표정을 살피신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또다시 자신 있게 “요즘 텔레비전서 우영우 보시지? 거기서도 고래가 나오잖어? 이게 바로 그 어마어마한 혹등고래여~ 이놈이 얼마나 바다 깊이 들어가는 줄 알아요?”
며칠 사이에 내 작품 전속 큐레이터가 되신 유 작가 아버님은 관람객이 뜸할 때는 직접 1층에 내려가 손님들을 몰고 오시기도 한다.
“여기부터 보고 가셔~ 여기 엄청난 고래가 있어요~. 사진 찍어 드릴까? 이쪽을 배경으로 하면 사진도 아주 잘 나와~ 그리곤 전문 사진사가 되어 하나 둘 셋을 우렁차게 외친다.
일행들과 내 전시실 투어를 마치면, 곧바로 따님인 유 작가 전시실로 그들을 안내한다. 마치 미술관 탐방 가이드 같은 모습이다. 전시 초반 다소 우스꽝스러운 액션으로 가이드를 하시더니 2주째 들어서는 정말 내 작품을 꿰뚫고 제대로 큐레이팅 하신다.
작품의 배경과 개념을 시작으로 제목 설명, 그리고 `꿈'이야기를 꺼내며 젊은 시절 자신의 꿈과 현실, 미래에 대해 작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설명을 이어가신다. 젊은이들은 신기하게 또 연세 지긋한 어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인 양 서로 소통하며 웃고 탄식하기를 반복한다. 때론 관람객들을 내게 데리고 와 작가를 직접 소개하기도 하고 아주 유명한 작가분이라 띄우면서 기념 촬영도 권하신다.
가끔 어디 가셨는지 전시장에 보이지 않을 때는 복도 저만치에서 아버님 소리가 들린다. “여기들 와서 작품들 보고 가셔~, 여기 진짜 멋진 작품들 있어요~ 애들도 보기 너무 좋아~. 아휴~ 여기 와보라니깐? 진짜여~ 그려 어서들 오셔. 오늘 진짜 호강들 하는 줄 알어~” 잠시후 전시장 문이 열리고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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