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요리사
배고픈 요리사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2.08.1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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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연일 폭염으로 시든 꽃처럼 모두가 축 늘어지는 나날. 동분서주 뛰어다녀도 늘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하고 숲 속에 길 잃은 어린 짐승처럼 이리저리 뛰고 달리며 하루를 쓴 소주 한잔으로 위로를 받는다. 쓴 소주 맛을 알면 비로소 삶의 맛을 안다고 했는데, 그저 쓴맛으로 위로를 받는 우린 회포를 풀 요량으로 보쌈집으로 모였다.

문전성시를 이룬 이곳, 벌써 사람들 네댓 모인 탁자엔 회포를 푸느라 웃음꽃이 만발하고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는 폭염 따위를 확 날려 보낼 기세다.

메인 요리인 보쌈과 족발은 물론 야채와 냉채가 한 상 차려진 밥상에 군침이 돌고 금세 젓가락은 탐색하기 바쁘다. 콜라겐 덩어리라는 족발, 촉촉하고 윤기 잘잘 흐르는 고기 한 점에 명란 쌈장을 찍어 명이나물에 싸 먹는 식감에 홀리어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산마늘이라 일컫는 명이나물, 예전 울릉도에선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나물을 캐다 삶아 먹으면서 생명을 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만큼 별미 중의 별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오가던 소주잔에 모두가 취기에 오를 때쯤, 무심코 주방 옆 식탁을 보고 놀랐다. 부대찌개와 김치 그리고 김이 전부인 밥상. 요리사는 고봉밥에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미식가들의 밥상엔 진수성찬으로 차려 내놓고, 정작 자신의 밥상은 소반(蔬飯)이다. 대장장의 집에 식칼이 논다더니 찌개와 서너 가지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다시피 하는 요리사, 삶의 음과 양이 엿보이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어르신들은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하셨다. 또한 요리사도 자신이 혼신을 기울여 요리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했다. 뿐인가 웃음치료사 역시 스트레스를 확 날리도록 강연을 하면서 관중이 호탕하게 웃는 걸 보면 절로 힐링이 되면서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오류인 것 같다. 어찌 보면 대리만족처럼 자신이 먹지 않아도 절로 배부르고, 웃지 않았음에도 행복해진다는 것은 착각 아닐까. 관객들은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호탕하게 웃고 그간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 보냈지만, 정작 명강연을 마치고 텅 빈 객석을 마주할 때면 외려 외롭고 고독하지 않을까. 요리사 역시 수없이 성찬을 차려내면서 정작 자신은 배가 고프고 마음이 허기가 진다 하지 않던가. 마치 밝음과 어둠을 아우르는 명암처럼, 현실에 두드러진 사회 구조가 어수선하게 뒤섞인 것이 못내 착잡한 마음을 후비고 들어온다.

그날, 맛난 음식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 어둠을 짊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언제쯤이면 쓴 소주 맛을 알까? 어느 작가는 `아버지 술잔엔 눈물이 절반이다.'이라고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자화상, 때로는 울고 싶지만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또한 아버지들의 모습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인 사람이며, 가족을 자신의 수레에 태워 묵묵히 끌고 가는 말과 같은 존재라고 작가는 말했다.

삶의 언저리, 세월의 나이도 분주하게 달리고 있다. 물도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못 사는 것처럼, 세상이 살만한 것은 음과 양이 공존하면서 조화롭게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오늘, 아쉬움과 허무함 그리고 흔들리는 발자국이 아닌 아름다운 발자국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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