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호우 경보 시스템
반지하 호우 경보 시스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2.08.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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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banjiha'. 말 그대로 영어 발음기호를 적용해 읽으면 `반지하'다.

최근 뉴욕타임즈(NYT) 등 유수의 외신이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며, 한국의 반지하 실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8일 밤 퍼부은 수도권 집중 호우로 안타깝게 4명이 반지하에서 익사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시간 당 100㎜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40대 여성 발달장애인 A씨와 여동생, 그 여동생의 10대 딸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주택에서 나오지 못해 익사했다. 순식간에 물이 지하에 들이닥치면서 수압에 출입문 등 비상구가 열리지 않으면서 당한 참사였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발생해 50대 여성이 사망했다.

외신들, 특히 뉴욕의 권위있는 시사통신사가 이번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2020년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때문이다.

당시 외신들은 주인공인 기택이네 가족들이 사는 반지하 월셋방을 언급하며 한국의 빈부 격차의 심각성을 부각시켰었다.

영화 기생충은 기택이네 가족들이 부잣집에서 쫓겨나듯 피신해 오면서 되돌아간 거주지인 `반지하'의 구차한 삶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쏟아내린 호우로 집안 전체가 물에 잠기고 스마트폰 전파가 잡히지 않아 주인공들이 반지하 화장실의 높은 장소를 차지하려고 오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등장한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반지하 문제가 반짝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서울시가 2020년 반지하 주택에 대한 집수리 비용 지원 대책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반짝' 선심성 대책에 불과했다.

단열재, 냉방기와 환풍기, 화재 경보기 등을 지원해주는 맞춤형 집수리 지원 대책이었는데 물품이 주거 편의를 위한 지원이었을 뿐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안전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이번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서울에서 폭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3명이 사망했다”면서 “서울의 반지하 거주민 중 빈곤층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NYT는 반지하 주거 형태가 영화 `기생충'의 배경으로 활용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BBC도 서울 남부에 내린 폭우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하면서 “그간 서울에서 홍수에 피해를 봤던 `반지하'로 알려진 `절반 지하층'에 대한 우려가 커진 터였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참사가 발생한 반지하 주택 현장을 방문하면서 각종 대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우선 앞으로 지하와 반지하 건축시설에 대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또 20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기존 지하와 반지하를 비주거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를 활용해 빈집 매입사업도 추진한다. 시가 사들여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사후약방문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가 아쉬운 것은 말할 나위없이 사전 경보시스템에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전 당국은 이미 숱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간당 100㎜의 폭우가 저지대 반지하 주택에 미칠 영향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상청의 호우 경보 발동에도 이들 위험 지대 거주자들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재난 경보 시스템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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