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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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8.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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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보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말은 여름휴가였지만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농장을 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맘때면 열병처럼 역마살이 발동한다. 참아야한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다녀왔다. 여행 내내 마음은 농장에 와 있었다. 2천여 평에 벌여놓은 일이 많아 걱정도 가지가지 많다. 고추, 땅콩, 백태, 서리태, 참깨, 들깨, 고구마, 옥수수를 심었고 남새밭에는 열무, 엇가리배추, 상추, 당근, 오이, 참외, 수박, 토마토, 파, 마, 도라지, 아욱, 고들빼기 등 이것저것 가지 수도 골고루 많다.
농장을 들어서자 입구까지 ?아나와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는 녀석들은 4마리의 애견들이다. 곧 만난 지 꼭 10년 된 `나리'와 그의 딸 `까미'. 그리고 `까미'가 낳은 아들`윌크'와 딸 '콩`이다. 그러니까 '윌크'와 `콩`이는 '나리`의 손자 손녀가 되는데 이 녀석들은 각각 우리 손녀와 손자가 지은 이름들로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나 아무리 들어도 귀여운 이름들이다. 앞다리를 어깨에 걸치기도하고 겅중겅중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산가족 상봉하는 듯이 어찌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자나 깨나 함께했던 녀석들과 한 보름 헤어져 있었으니 오죽하랴.
밭을 일구고 씨 뿌려 가꾸며 수확하기까지 농사일은 내가 하지만 농작물을 지키는 일을 그들이 하니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해야 맞다. 풀을 뽑고 소독을 하며 가꾸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지키는 일이다. 야생동물과 조류들이 들끓는 산중이다 보니 밤중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출몰하여 피해를 입힌다. 사람이 아무리 철저히 경계를 서도 소용없다. 청각과 후각이 발달된 개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리와 냄새로 산짐승이 출몰한 것을 알아차리고 퇴치시킨다.
개의 후각능력은 사람보다 대략 100배 이상 높다고 한다. 후각 세포는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하기 위해 사람보다 후각세포수가 많고 상피 세포의 표면 면적도 넓게 만들어져 있다. 코는 항상 촉촉하게 물기가 있어서 콧구멍으로 느끼는 것을 증폭 시킬 수 있고 공기중에 냄새가 난다면 입자를 감지해서 후각 세포로 전달하게 된다. 또한 냄새를 감지하기 위해 대뇌 세포가 사람보다 40배 정도 많다.
청각의 경우는 다른 동물처럼 훨씬 발달되어있는 감각인데 견종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보다 4배 이상 멀리 있는 소리를 느낄 수 있어서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느끼고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의 주된 감각은 시각이라면 개는 후각이고 청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밭 입구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오른쪽 땅콩밭 도랑에 산짐승 사체가 쑤셔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너구리다. 어쩐지 개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싶었는데 농장을 비운 동안 너구리가 내려 왔다가 개의 공격을 받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리라. 개들 중 리더 역할을 하는 `나리'가 사체를 툭툭 치며 보란 듯 으스댄다. `까미'와 `윌크' 녀석도 덩달아 나부대며 의기백배다. 언제나 사냥을 마치고 나면 용맹함을 자랑을 하는 개들이다. 이럴 땐 간식을 주고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선 마음 급한 김에 경계를 따라 밭뙈기를 건성건성 둘러본다. 몰라보게 부쩍 자란 농작물들이 눈을 의심케 한다. 땅콩과 고구마는 골과 두둑을 구별할 수 없게 뒤덮여 있고, 고추밭은 불 질러놓은 듯 빨갛다. 특히 참깨는 검은 꼬투리가 쩍쩍 입을 벌리고 섰는데 바닥을 보니 아뿔싸! 하얗게 알곡이 쏟아져 있다.
농번기엔 절대로 농장을 비워서는 안 되었음을 어찌 몰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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