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을 보며
달맞이꽃을 보며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2.08.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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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저녁 산책에 나섰다. 비가 온 뒤라 풀꽃들이 막 세수를 마친 새색시 같다. 그중 노란색 달맞이꽃이 눈길을 끈다. 둑길을 따라 여린 잎을 돋우는 작은 꽃과 튼튼한 꽃대에서는 참깨 송이처럼 세력을 불리며 씨앗이 영글고 있다. 삼복더위가 마냥 즐거운 듯 꼬투리마다 씨앗이 가득하다. 밤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데, 필시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몇 해 전 여름밤 피서지에서 넓은 들판에 쫙 깔린 달맞이꽃을 바라보며 신비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꽃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 줄 몰랐다. 햇볕이 내리쬐면 꽃잎을 접는 달맞이꽃은 낮에는 그리 예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면 달빛을 모으는 능력이 뛰어나 형광으로 바뀐다. 생존 전략으로 밤에 꽃을 피우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주행성 곤충보다 야행성 곤충이 20배 이상 많다고 한다. 달맞이꽃은 귀화식물로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다. 해방초(解放草)라 불리기도 하는 꽃은 외래종이지만, 이미 자연 생태계 내에서 곤충들에게는 우호적인 이웃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달맞이꽃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생각났다. 몽골에서 시집온 이웃이다. 그녀의 남편이 우리 집 아래층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작은 체구에 두 눈이 반짝였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그녀는 바뀐 환경 탓에 시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무척 힘들어했다. 그럴 때면 집으로 자주 불러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그녀는 전화기 옆을 떠나지 않았고, 한 달 전화요금이 백만 원이 넘는다며, 그녀의 시아버지가 내게 하소연하는 일이 많았다. 그녀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문화가 같은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해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은데, 낯선 타국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붙여보려고 애쓰는 그녀의 답답함을 알기에 동기간처럼 자주 만나 위로해 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몸짓 손짓이면 충분했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나고 안정을 찾았다. 육아가 힘이 들 때 가끔 나를 찾아오는데 그동안 말이 풍성해지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 그녀의 남편이 “식구가 아주머니와 상의할 일이 있대요. 한번 만나주세요.” 했다. 오랜만에 그녀와 마주 앉았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본인 이름의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를 사려면 돈이 좀 부족하지만, 착실한 회사생활로 은행 신용도가 높아 대출도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아파트 구입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보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이곳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17년이 되었다.

달맞이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형광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밤에 나방과 박각시 등 곤충을 불러들여 수정을 하고 영역을 넓혀 나가듯이, 그녀 또한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간 수당을 받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야간 근무를 자진해서 했다고 한다. 가족의 튼튼한 울타리와 자식들의 꿈을 위해 일이 힘들기보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마침내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제 그녀는 귀화인이 아닌 토착민으로 살고 있다. 처음에 시집와서 막막했던 일들을 떠 올리며 국제결혼 한 후배들의 상담자 역할도 해준다고 한다. 당당한 그녀의 자신감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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