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이 아름다운 건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8.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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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볕이 따갑다. 부지런한 해는 이미 후덥지근한 입김을 쏟아내고 있다. 뜨겁기 전에 서둘러 나왔건만 한걸음 늦었다. 데크로 꾸며진 용산저수지의 둘레길을 걷는다. 자칭 작은 호수가 나를 여기로 이끈다. 바람에 이는 잔물결 위로 내려앉는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오롯이 나를 만나는 이 시간이 좋다. 운동이라기보다 행사처럼 챙기는 산책이다. 평일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한번 건너뛰면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한주가 얼마나 지루한지 모른다.
오늘따라 강태공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마도 밤샘을 한 듯 보인다. 겁이 많은 내가 혼자 이곳을 찾아도 이들이 있어서 안심이다. 호수를 바라보며 산그늘로 들어간다. 들숨과 날숨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긴다. 두 팔을 벌려 나비의 날갯짓을 하며 기분이 한껏 부푼다. 나무 사이로 새어든 볕뉘가 날개에 와 살포시 앉는다.
나의 유유자적한 산보를 거슬리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앞에서 날아다니며 눈을 공격한다. 날파리는 원래 사람들의 눈을 좋아하는 것일까. 유독 눈에 잘 들어가는 편이다. 손사래로 ?느라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순식간에 망중한은 사라지고 운동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이다.
출근길에서도 종종 복병을 만난다. 길이 훤하여 차가 잘 달리는 중에 동네에서 나온 차가 내 앞에 낀다. 출근길이 순탄하여 다행이라고 하던 차에 테클이 걸린다. 2차선 도로로 시골인데도 교통량이 많아 추월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앞의 차가 느린 속도를 내면 나도 그 속도로 따라가야만 한다.
막히지 않아 흐름을 타고 달리다가도 모퉁이를 돌아가면 큰 화물차가 가로막는다. 안전속도 이하로 달려 차들이 밀려 뒤로 줄을 잇는다. 이러면 바쁜 출근길에 몸이 단다. 다 가도록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화가 올라왔다. 교통사고가 난 후로는 조금씩 마음이 다스려졌다. 어차피 추월하지 못할 거면 느린 속도도 익숙해지려는 긍정으로 바뀐 것이다. 덕분에 작년 봄에 보지 못했던 복숭아 꽃을 올봄에는 지도록 보았다.
지금은 출근길이 아무리 막혀도 마음이 여유롭다. 차가 끼어들 때마다, 별안간 큰 화물차를 만나게 될 때마다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인생의 복병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야'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을 한다. 나를 향해 던지는 말이다. 삶 앞에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당황하게 하는 장애물은 신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까지 살아보니 알겠다.
전에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과정을 지켜 본 적이 있다. 작은 구멍에서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구멍을 내주었다. 힘을 들이지 않고 더 쉽게 나온 나방은 무슨 일인지 날지를 못했다. 나는 몰랐다. 스스로 그 벽을 깨고 나와야만 찬란한 나방이 된다는 것을. 어리석은 내가 나방에게 몹쓸 짓을 한 셈이다.
신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난이 닥치면 똑같다고 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걸까 하고 누구나 거부한다. 그걸 받아들이고 이겨냄으로써 성장을 하게 된다. 고통을 이겨내는 만큼 강해지고 성숙해진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진가를 알듯이 힘든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만이 밝은 빛을 낼 수가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좋아하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명대사다. 지치고 힘든 시간을 견뎌서 사막을 건너보아야만 사막이 아름다운 줄 안다. 인생도 그렇다. 시련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뒤에 숨어 반짝이는 희망을 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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