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8.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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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꽤 여러 개 있던 갖가지 모임을 크게 줄였다.

나만 아니라, 실감하지 못한 채 어쩌다 (사회적) 어르신의 대열에 휩쓸린 갓 예순의 세대가 대부분 그렇다.

그중에서 몇 개의 모임은 중단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경을 쓰는 모임이 있다.

어느덧 정년퇴직을 한 지 몇 해가 흘러 이제는 노련한 백수가 되신 전직 대학교수 몇 분과 자식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뒷방 노인네를 마다하지 않는 사업가 등 10명이 넘지 않은 이 모임에서 나는 막내의 처지를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모임의 대가 끊기는 것을 걱정한 어르신들의 배려로 서너 명의 손 아래 동무들을 끌어들여 막내의 신분을 겨우 벗어났다. 대부분 여든을 훌쩍 넘기거나 일흔 중후반의 세대인 이 모임의 회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단하게 세상을 살아오셨는지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게다가 극성의 일제 강점기와 전쟁 등 모진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헤쳐 온 시대 상황을 떠올리면 함께 모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숭고할 따름이다.

벌써 30년 가깝게 계속되고 있는 이 모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막내답게 연락과 장소 물색, 회비 관리 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은 `듣는 것'과 `말 줄이기'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회와 국가적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극단의 고난 순간순간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겨우 `민주주의'와 `자유'에 목말라했던 격정의 시간을 실감했으나 그마저도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의 경지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무조건 꼴통보수로 차별과 격리를 일삼는 세태에서 일흔과 여든까지의 세월을 헤쳐 온 이들의 희미한 말을 그저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존경의 진심이며, 모임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겠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될 수 있는 한 개인적 의견 제시를 최소화하고, 정치적 주장을 삼가며 막무가내로 설득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는 것. 그리고 결정적인 오류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잡으려 하지 말고, 젊다고 최신의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이 모임을 통해 소중하게 깨달은 것이다.

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런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 자수성가형인 모임의 어르신들은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걱정과 약간의 질투심, 그리고 제대로 보답 받지 못하는 처지와 그렇게 피땀으로 얼룩진 자신들의 청춘이 속절없이 사라지고 없는 시절에 대한 원망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현안에 대해서는 지극히 반항적이고, 특히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겪은 탓인지 전쟁과 공산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과 `퍼주기'로 인식이 고착된 특정 복지 분야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다.

얼마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인내를 거듭하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미래 세대와 다가오는 지구의 위기 등 긴 안목이 필요한 고민보다는 당장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하다.

나라와 특정 정권에 대한 불만과 비난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그리고 공개적인 모임이 아니라면 충분히 설득할 수도 있고, 그른 일이 아니며 특히 `역사'의 이름에 이르면 대체로 수긍 또한 빠르다. 문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최근의 모임에서 여든과 일흔 세대의 모임 어르신들의 말수가 크게 줄었다는 데 있다.

막무가내식으로`문재인' 욕을 하며 원기왕성했던 어르신들에게서`정치'이야기가 실종된 것이 단순히 오르내림을 교차하는 지지율 때문이라면 언젠가는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대화라도 시도될 만 한 데, 아예 나라와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틀린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고, 틀렸으면 반성하면서 다시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되고, 그걸 자식들, 후배들에게 말해 주면 됩니다. 그러니 마음껏 화풀이를 하세요.”

다음 모임에는 어르신들의 침묵을 깨기 위해 이런 말을 꼭 하고 싶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 굵게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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