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어야만 하는
여름이어야만 하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7.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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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오락가락하는 비에 며칠 여유를 부렸다. 그 틈을 타고 이게 웬 횡재냐며 땅속에 있던 풀들이 죄다 마당으로 나온 것 같다. 새벽부터 남편과 나는 구역을 나누어 풀들과 열심히 놀아줬다. 이것도 한철, 이 여름에나 즐길 수 있는 일이다. 겨울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풀들과 씨름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한바탕 땀을 흘리고 먹는 아침밥은 꿀맛이다. 텃밭에서 오이, 가지를 따서 오이 하나는 무치고 하나는 채로 쳐서 얼음물에 냉채를 하고, 가지는 들기름에 볶고 청양고추 쫑쫑 썰어 된장찌개 끓이고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양푼에 썩썩 비벼 마당에서 먹는 이 맛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다른 계절에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이 계절에 먹고 누려야 제 맛 제멋인 것이다.

마당에서 모깃불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보는 일,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한낮의 매미소리, 우리는 이 여름이 차려주는 푸름을 열심히 즐겨 볼 일이다.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자연의 향연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 여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중에 몇 가지만이라도 누리며 살아 볼 일이다. 예술은 즐기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자연도 누리는 사람의 것이다. 환경 탓만 하면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다.

한낮에 적삼을 뚫고 등으로 사정없이 내려앉는 삼복의 불볕, 가히 최고다. 등에 불이 붙어 타들어 오는 것 같다. 불볕도 풀들의 생애도 한 여름인 지금 가장 깃발 날리는 시기다. 이 기세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꺾을 수가 없다. 맘껏 뜨겁게, 맘껏 세력을 키우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풀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내면 못 이룰 것이 없을 것 같다.

꽃 한 송이 피우는 일도 우주의 섭리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햇볕이 있어야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 꽃을 키우며 자연과 사람살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처음에 핀 꽃은 예쁠 때 즐기고 꽃을 잘라낸다. 꽃을 잘라내면 곁가지에서 다시 꽃을 피운다. 꽃을 더 많이 오래도록 보기 위한 내 이기심이다. 몇 송이는 자르지 않고 씨를 맺게 한다. 씨를 받기 위해 더이상 곁가지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 번 피고 나면 오로지 씨에게 모든 영양분을 주어야 하는 것이 그 꽃의 숙명이다. 우리도 자식을 낳으면 내 생의 모든 것을 자식에 쏟듯 식물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되면 자식 뒷바라지로 생을 바치지만 자식을 낳지 않으면 온전히 자기 인생인 것이다. 꽃을 잘라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은 아니다. 씨앗을 남기는 것도 위대한 일이고 꽃을 여러 번 피워 오랫동안 꽃을 보여주는 일도 꽃의 사명을 다 하는 것이다. 내가 마당에 풀을 뽑는 것은 꽃을 위한 것이 아라 예쁜 꽃을 보기위해 하는 일이다.

마당에 목 백일홍과 수국이 절정이다. 남의 집 수국을 보고 저 꽃은 뭐가 저렇게 예쁜가 했더니 수국이었다. 내 집에 피어 있는 것은 당연하여 귀한 줄 몰랐다. 이 뜨거움도 당연하게 여기지만 지나가면 그리울 것을 알기에 나는 한껏 즐기려 한다. 이 용광로 속 같은 불볕도 머지않아 힘을 잃을 것이다. 이 싱싱함이 살아있을 때 맘껏 즐기는 것이다. 한나절 마당에서 놀았더니 마당이 훤해졌다. 이 여름이어야만 하는 것들을 찾아 즐겨보는 것도 여름을 즐겁게 살아내는 것이리라. 지금 하지 으면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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