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길
비채길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7.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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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이십년 전 부터 연을 맺은 k가 음성에 살고 있다.

늦깎이 학업을 하며 만난 우리는 학업을 마친 후에도 충주에 있는 또 다른 지인과 셋이서 가끔 만나 사는 이야기, 문학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왔다.

언제부터인가 남편들까지 합류해 음성, 충주, 제천을 번갈아가며 모임을 이어왔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 그 고장에 산책길을 걷고 가벼운 산행도하며 일 년에 한 두 번은 부부동반 여행도 다니곤 하였다.

몇 해 전 그날 가기로 한 곳이 큰산(보덕산)이라 했다.

음성에서 세 부부가 만나 점심식사를 한 후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하니 가볍게 등산 할 마음이었다.

행치마을 반기문생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끔 청주를 오갈 때 행치재 인근에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면 산위에 정자가 눈에 띄었다.

볼 때마다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 산을 오른다니 마음이 들떴다.

주차장 인근 연못에 수련이 막 몽우리를 터트렸다. 반기문 생가 터와 평화 랜드를 지나 등산로를 찾아 들어섰다.

큰산은 해발 오백 미터 남짓하니 쉽게 오를 줄 알았다. 등산로를 좀 걷다보니 침목으로 된 계단이 나왔다. 옆으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시야가 트인 곳 없이 한참을 올라야 했다.

숨도 가쁘고 더워서 땀이 많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라 그런지 등산은 마음먹었던 것 보다 훨씬 힘들었다.

함께하는 지인도 현기증이 일어나고 숨이 많이 차다며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내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한 타임 늦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일행은 정상에 다다랐다.

멀리서 바라보던 정자에 앉아 사방으로 펼쳐진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산 이름이 큰산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인근의 산들은 물론, 아주멀리 충북에 있는 이름 있는 명산들도 아득히 조망할 수 있다하니 산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아래로 넓게 펼쳐진 음성지역을 한 눈에 담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하산 길에 들었다.

올라 갈 때는 그리도 힘들던 산이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이 산의 등산길은 산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하늘 길, 빛의 길, 땅길 등 세 개의 테마 코스로 이루어져있다.

큰산은 비움과 채움의 길을 품고 있는 의미 있는 산이었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급급해 비채길에 대해 생각을 못했다.

정자가 있는 정상에 올라 확 트인 풍광을 느껴보려는 성급함으로 산이 품은 진면목을 모르고 등산을 한 셈이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모든 것을 다 보았노라고 감탄했다. 산을 오르며 마음에 온갖 욕심이나 자만심과 성급함도 비워야 했거늘 우매함에 비채길이 주는 귀한 선물을 채우지 못했다.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은 참 소중하다.

한참은 동생벌인 k는 충주에 있는 지인과 나를 때로는 친구처럼 어느 때는 언니처럼 격려해주며 문우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가끔은 글쓰기를 주저할 때 두 사람은 내게 큰 힘을 준다. 삶의 길에 소중한 인연과 함께 비움과 채움의 길을 음미하며 다시 한 번 그 산을 올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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