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서2
연못가에서2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7.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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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여름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 간다.

여름 레저 같은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농사도 거의 일손을 놓고 쉬어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도 연(蓮) 농사는 여름이 한창 바쁜 철이다.

물에서 하는 일인지라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연(蓮)을 통해 여름 풍광의 한 단면을 포착해 냈다.


연못가에서2(池上二絶)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조그만 예쁜 아가씨가 작은 배를 저어 가서는
偸採白蓮回(투채백연회) 흰 연꽃 몰래 따서 돌아가네
不解藏蹤跡(불해장종적) 자취를 감출 줄 몰라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부평초 사이로 한 가닥 길을 내고 말았네

시인은 연못가에서 여름 더위를 피해 한가롭게 지내고 있던 차였다. 마침 그 연못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한여름이면 연꽃은 뿌리는 물 아래 박은 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일부는 연밥을 달고 있기도 한다.

연꽃만이 보이던 고요한 연못에 갑자기 큰 움직임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었다. 작은 체구의 예쁜 아가씨가 자그마한 쪽배의 노를 저어 가서는 몰래 흰 연꽃을 따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아마도 시인은 그 아가씨가 연꽃의 주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무엇 때문에 흰 연꽃이 필요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의 것을 몰래 따 간 것은 분명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비난의 기색 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연꽃 연못에 왔다 간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연못 안에 가득 떠 있는, 또 하나의 여름 풀 부평초 사이로 배 지나간 길이 남은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 시인이 도리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여름은 한가로움과 정적을 동적인 장면을 이용해 그려낸 시인의 솜씨가 탄복을 자아낸다.

짜증 나고 지치기 쉬운 여름을 지내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거기에 따뜻한 시선과 재치 있는 상상이 더해진다면, 여름 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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