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사과 속에는
한 알의 사과 속에는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7.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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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저 멀리 아들이 걸어온다. 멋지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지라 마중을 나갔다. 내 나이를 부정하다가도 장성한 아들을 보면 억지가 쏙 들어간다. 저리 크는 동안 세월이 나만 비켜 갈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인가 보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막내아들을 보고 나이를 체감하신다고 한다.

어머니는 올해로 91세이시다. 다리가 몹시 불편하여 걷지를 못해서 올 봄에 요양원에 모셨었다. 거기서 한 달을 간신히 채우고 둘째 아들네로 가셨다. 밖을 나갈 때도 쪼그려 걷는다. 그러다 답답하면 아예 기어 다니신다. 볼 때마다 너무 힘들고 안쓰럽다.

그래도 이게 편하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하신다. 마음의 평안을 주는 어머니의 집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형님과 아주버니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시시로 걸려오던 전화가 요즘은 잠잠하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증거다. 요양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와 귀찮을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종일 집에 가고 싶다고 볶아댔다. 면회를 가도 코로나로 만나지도 못하고 갑자기 연을 끊은 셈이 되었으니 마음이 오죽했을지. 혼자라는 생각이 엄습해 와 깜깜해지면서 무서우셨으리라.

어제 뵀는데 무슨 일일까.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래, 얼마나 서운햐. 그거 하나 보고 사는데 멀리 떨어뜨려 놓아서 에미 맘이 많이 안좋지. 니들이 서운할 생각을 하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목소리가 젖어 있으시다. 기쁘기도 하고 짠하면서 복잡한 마음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어머니뿐이다.

손자가 떠났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다음 달에 미국으로 출국을 앞두고 주말에 미리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우리 앞에선 내색을 하지 않더니 섭섭할 아들 내외가 걱정이 된 듯했다. 아무리 아직 안 갔다고 해도 전화에 울음이 밴다. 내 말은 들리시지 않는 것 같다.

박사 손자가 큰 힘이고 자랑거리다. 자신이 당장 죽어도 복이라고, 여한이 없다고 한다. 아들이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보이셨다.

지난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말에 또 눈물을 흘리셨다. 대견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이 선하다. 고생했다며 나의 노고를 치하했다. 최고의 찬사였다.

어머니는 뵐 때면 나를 붙들고 할 말이 많으시다. 그냥 다 들어드린다. 종종 울안에 있는 텃밭에 풀을 뽑다가 아주버니께 들켜서 혼이 나셨다고 한다. 집을 비운 사이에 땡볕에 일을 하시니 그럴 만도 하다. 어머니는 밭을 가꾸는 일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그 일에 손자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음을 얼마 전 대화중에 알았다.

“내가 웬만하면 풀은 다 뜯는겨. 고, 작물을 타고 비비 돌아 올라가는 놈을 보면 무조건 뜯어내. 어떤 나쁜 놈이 잘 나가는 우리 손자를 해코지하는 것 같아서 두고 볼 수가 없어” 아마도 넝쿨식물이 작물을 타고 올라가 못살게 구는 모습이 혹여 손자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연상이 되는가 보았다. 그런 마음으로 텃밭을 돌보고 계셨다.

전화를 타고 풀을 뜯는 어머니의 마음도 넘어온다. “한 알의 사과에는 온 우주가 담겨있다” 땅의 영양분과 햇볕, 바람과 비,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는 뜻이다. 묘목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그 열매가 익어 사과가 되기까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은혜와 수고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아들이 어엿한 어른이 된 것은 수많은 눈길이 있어서다. 대놓고 불거진 나의 기도와 어둑한 세상을 살면서도 간절한 염원을 갖고 계신 어머니.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내준 마음들이 잘 키운 것이리라. 이제 아들은 한 뼘 더 크기 위해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간다. 떠나는 날, 사과 속 우주가 네 안에도 있음을 일러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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