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자비와 사랑
참된 자비와 사랑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2.07.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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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불교에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외에도 다양한 경전들이 존재한다.

그 중 `열반경'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상대를 포용하고 보살피는 섭수(攝受) 자비와 함께,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엄하게 꾸짖어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잘 이끌어주는 절복(折伏) 자비를 강조하셨다.

이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녀를 교육하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칭찬 일변도이거나 지나치게 타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면, 조화로운 인간관계는 요원할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열반경의 가르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비로운 보살 도를 실천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언제나 따듯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보살피는 섭수 자비에 치우쳐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불교의 `승만경'이란 경전은 “절복 할 자는 절복하고, 섭수 할 자는 섭수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요즘의 표현을 빌린다면, 당근과 채찍을 적재적소에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올바름으로 이끄는 빛의 역할과 함께 그릇된 생각에 눌러앉아 삶이 부패하는 일이 없도록,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소금의 역할도 병행하는 일이다.

섭수 자비와 절복 자비를 적절하게 선용하는 것을, 동양 사상의 골수를 간직하고 있는 주역(周易)은 “중정무구(中正無垢) 음양화평(陰陽和平)”이라는 짧은 구절로 설명하고 있다. 중정무구 음양화평이란,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올바르며, 음과 양이 온전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다.

중정무구 음양화평은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쉬는 일에도 적용된다.

그림의 밝음과 어두움, 음악의 고음과 저음 및 빠른 멜로디와 느린 멜로디 등도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함은 당연하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실현돼야 하는 중정무구와 음양화평은, 습관에 젖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이, 처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지혜를 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맑고 밝은 지혜가 발현되기 위해선, 언제나 과거의 습관에 끌려가지 않는, 깨어 있는 순수 의식을 전제되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과거의 습관에 젖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구태의연한 삶을 고집하는 일 없이, 매 순간 온전히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섭수 자비와 절복 자비를 자유자재로 선용하면서 빛의 역할과 함께 소금의 역할을 아우르는 지혜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는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닫고 참된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 어떠한 특정 프레임에 사로잡힘 없는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 4단을 실천하는 군자, 이웃을 제 몸처럼 보살피며 원수조차 사랑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 흐르는 강물처럼 억지로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즐기는 도인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지구촌이 건설되길 바란다.

전 인류가 매 순간순간 온전히 깨어서, 자신이 어떤 생각과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림으로써, 음양이 조화로운 멋지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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