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과 문국현
유일한과 문국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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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두<부국장(영동·옥천·보은)>

기업의 목적은무엇인가. 년 전 한 대기업이 신입사원 면접에서 던졌던질문이다. 면접위원이 기대한정답은 '이윤(수익) 창출'이었다. 그러나 많은 응시자들이 '수익환원을 통한 사회적 기여'라는 오답()을 내놓아 입사의 기회를 놓치거나 감점을 당했다고 한다. 이 회사 오너에게 '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를 들이댄다면, 헛소리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한 CEO가 평생 기업을 운영하며 실천했던 좌우명이다. 유한양행그룹 창업자인 고 유일한(柳一韓)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기여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 이익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이익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돌려준다는 것이 그가 생전에 되뇌었던 경영의 목적이었다. 그는 한치의 어긋남 없이 자신의 철학들을 실현시켰다.

유 박사는 국내 기업 최초로 사원지주제를, 그것도 기업경영의 맹아기인 일제시대에 도입했다. 경영에서 물러난 후 혈연을 완전히 배제하고 전문경영인제도를 착근시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숨을 거두며 전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함으로써 2세에게는 사업체는 물론 한 푼의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권력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국세청의 보복성 세무사찰을 받지만, 사찰 과정에서 오히려 모범납세업체로 꼽혀 표창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굴지의 재벌들이 탈세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법처리를 받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 경영 풍토에서는 하나의 전설이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유한양행그룹이 미국 킴벌리클라크사와 합자해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의 대표인 문국현씨가 지난 22일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심정으로 국민의 숲으로 걸어가 희망의 중심이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천명하면서 말이다. 문 사장은 청년시절 취업을 앞두고 삼성과 유한양행을 놓고 고민하던 끝에 삼성을 권유한 가족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유한을 택했다고 한다. 한 대학 강연에서 그는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는 유한양행을 택한 것은 전문경영인을 중시하고, 소유를 거부하는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사장이 대중적 지명도가 낮은 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로 꾸준히 거명되며 대권주자 반열에 든 것은 유한 출신 경영인이라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한의 선구적 경영방식이 국가경영에 도입된다면 하는 가정을 깔고 문 사장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약자와 인권, 근로자, 환경을 중시하는 그의 발언들이 인간적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며 지지층도 형성해가는 분위기다.

문제는 기업과 정치는 판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데 있다. 유시민 의원이 "정치도 시장인데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며 문 사장의 결단을 평가절하한 것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기업에서 그는 원칙과 합리가 추구되는 완벽한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으며, 경영에 매진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그가 스스로를 경영해야 할 정치판은 원칙도, 합리도, 인간성도, 때로는 한줌의 염치조차도 찾을 수 없는 진흙탕일 뿐이다. 입사후 별다른 난관없이 승승장구하며 CEO에 오른 그가 거칠고 비정한 정치판을 헤쳐나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쨋든 문 사장의 대선 출마는 향후 그가 겪게 될 정치적 성패와 상관없이 유일한 박사의 고고한 정신이 정신적 후계자를 통해 기업을 넘어 정치로 흘러들게 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유 박사는 숱한 업적을 일궜지만, 성취보다는 명예를 중시했던 인물이다. 문 사장 역시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 유 박사와 유한의 정신을 정치판에 접목하는 가교가 되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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