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추주연 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2.07.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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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월요일부터 토요일 날씨 소식을 보러 기상청 날씨누리를 밥 먹듯이 들락거렸다. 소풍을 앞둔 아이마냥 주말 비 소식이 없기를 기도해 보지만 전날까지 우산 그림이 사라지질 않는다. 드디어 토요일, 예보와는 달리 파란 하늘에 햇살이 쨍하고 구름도 하얗다. 날씨예보가 맞지 않은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오늘은 연수 과정으로 옥천 마을교육공동체 탐방을 하는 날이다. 오랜만의 탐방이라 설렘 가득 출발하는 길에 이런저런 걱정도 덩달아 따라온다.

5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옥천은 농가 비율이 30%라고 한다. 대전과 맞닿아 있어 TV는 청주 채널, 라디오는 대전 채널이 잡히다 보니 미디어에서 옥천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 독립신문 기자였던 유정 조동호 선생, 경향신문 주필을 역임했던 정지용 시인, 한겨레신문의 초대 발행인인 청암 송건호 선생이 옥천 미디어 역사의 어른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정신을 이은 옥천신문은 지역의 각종 현안을 다루며 주민의 삶과 밀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지역신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옥천신문에서 청소년 기자로 활동한 지역의 청년들은 옥천공동체라디오의 PD가 되었다. 옥천 청년들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된 사회적 기업인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은 농촌문화 패러다임의 전환과 농촌재생을 실현하며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고 복합문화공간 둠벙을 운영하고 있다.

탐방 첫 코스로 먼저 먹을거리 기본권을 지켜내는 옥천살림협동조합을 둘러보고 옥천 주민들이 마을과 이웃의 이야기를 담아 직접 만드는 지역밀착형 방송 옥천공동체라디오를 찾아갔다. 장애인, 이주민, 농민 이야기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청소년, 청년, 어르신 등 다양한 세대가 방송 중이다. 우리도 직접 프로그램 기획서를 작성하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선정한 방송 주제는 미워하고도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선곡한 음악은 만장일치로 결정한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다. 일일 DJ를 맡아준 옥천공동체라디오 편성국장님의 오프닝과 함께 노래를 먼저 듣고 가족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분 남짓의 짧은 라디오 녹음인데 사람들은 가족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한다. 미워하고도 사랑하는 아버지 이야기, 남편 이야기, 아들과 딸 이야기. 그렇게 옥천공동체라디오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나와 이웃의 이야기를 말이다. 자기 이야기를 주고받아 삶을 공유하게 된 우리는 서로를 향한 눈빛이 더 따뜻해졌다.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는 마을에 살며 마을을 일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둠벙은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 시시콜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들, 강의를 듣는 어른들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공간이다. 서로를 훼방꾼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한다. 시끌시끌한 둠벙은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귀 기울이게 한다.

옥천은 분명 살고 싶은 멋진 마을이다. 다른 마을과 다른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천은 마을이 배움터이고, 일터이고, 삶터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곳, 살아 꿈틀거리는 마을이다. 설렘과 걱정을 안고 왔던 탐방길이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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