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모든 것의 시작
`기본' 모든 것의 시작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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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소싯적의 나는 운동신경에 대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은 편이었다. 지금은 둘 다 손을 놓고 있지만, 테니스에 심취했을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폼은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선천적이었을 나의 괜찮은 운동신경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효력이 떨어졌고, 기량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히며 결국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 원인을 나는 정확하게 안다. 지나치게 승부욕에 집착하던 성정으로 인해 아주 기초적인 공다루기를 익혔다 싶으면 곧바로 `내기'에 도전했고, 타고났다는 찬사를 받았던 운동신경의 효능은 딱 거기까지였다. 문제는 `기본'을 제대로 익히는 과정을 무시한 데 있고, 그로 인해 나는 패배의 쓴맛을 얻은 만큼 테니스와 골프의 여유를 즐기는 기회를 내내 상실했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최근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내 실패와 좌절의 기억은 `기본이 바로 선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확대된다.

벌써 건국 75년이 지났고,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날 선언'이 100년을 넘겼는데 여태 우리는 아동에 대한 `기본'조차 마련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동의 권리 존중과 보호를 위한 국가적 책무조차 `법'으로 정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지는 않다.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방지법, 영유아보육법이나 유아교육법 등 각종 교육 관련 법에 개별적으로 규정하면서 아동의 권리 보장에 대한 울타리는 만들어놓고는 있다.

그러나 이들 법은 아동을 보호의 대상, 보육의 대상, 교육의 대상으로 국한하는 어른의 지배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

아동이 주체가 되어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과 함께 기존의 아동 관련 개별 법률과 유기적인 체계를 갖는 포괄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동기본법'의 의미는 막중하다.

내년 쯤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동기본법'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아동의 `놀 권리' 보장에 대한 항목이다. 아동이 일상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것을 마침내 `법'으로 정하는 것이니, 놀이 환경을 통해 잠시라도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는 숨통을 기대할 만하다.

`아동기본법'에는 이밖에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발달권, 생존권, 참여권, 환경권 등 아동이 누려야 하는 구체적인 권리들을 적시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는 아동을 위해 건강한 성장환경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고, 보호자는 아동을 존중해야 할 책무가 있으며, 기업은 아동에게 유해한 환경 조성을 방지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는 점도 규정될 것이다. 또 아동이 책임 없는 채무를 지지 않도록 하고, 학대를 당한 아동이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지'와 `보호'의 피동적이며 수동적인 지배와 간섭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아동에 대한 주체성이 인정되고 보장되는 길이 `법'의 이름으로 비로소 열릴 수 있느냐에 있다.

1989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기본권을 생존의 권리와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아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참여의 권리는 각별히 존중되어야 한다. 건국 이후 지금껏 `보호'라는 미명 아래 감시와 통제, 간섭의 대상이었던 아동의 인격체를 존중하는 `기본'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뿌리가 튼튼한 게 먼저다. 보이는 위쪽보다 보이지 않는 아래쪽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손흥민을 월드 클래스로 키운 아버지 손웅정씨가 그의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한 말을 주목한다. 종속과 지배, 압축성장을 통해 무시되었던 `기본'은 아동을 인격과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함으로써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불안이 커지고 있는 팬데믹의 시대, 모든 것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거대한 전환의 시대 앞에서 손웅정은 거듭 말한다.

“끊임없는 변수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차곡차곡 밑바닥부터 쌓지 않으면 기량은 어느 순간 싹 사라진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려면 바닥부터 사다리를 딛고 가야 한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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