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박골에 있는 이오덕 선생의 시비
고든박골에 있는 이오덕 선생의 시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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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문학 칼럼
이오덕 시인은 흙과 나무와 바람과 새소리로 살다 가신 분이다. 그러한 삶의 한가운데는 가난하고 순박한 시골 어린이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 정우씨가 장사를 한답시고 돌아다니다가 털어 먹을 즈음 이오덕 선생이 퇴직금을 주시면서 전국에서 가장 싸고 쓸모없는 곳을 골라사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자고 하여 마련한 삶터가 바로 '곧은박골'이다.

이 부자는 이 산비탈에 뼈마디를 부딪치며 살았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며 구름과 바람 속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하루 해를 지웠다. 정우씨의 부인은 곧은박골로 가는 길 도로변에서 '보리밭'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하고 있는데 식당 벽에는 이런 시골 식당에 가당치도 않게 신영복 선생의 글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있다. 이오덕 선생의 돌집은 여기에서 약 십분 더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며누리가 생활전선에 나선 것을 보면 이 순박한 두 부자의 살림꾸리는 재주로는 밥을 먹고 살기 쉽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집 입구에는 이오덕 선생의 시비가 서 있고 그 안쪽에는 권정생 선생의 문학비가 하나 더 서 있다. 넓은 마당 뒤편에는 염소와 닭을 키우는 우리도 함께 있다. 산기슭에는 작은 집 하나가 더 서 있는데,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 시인이 와서 살라고 직접 지었다는 흙집이다. 일곱 평이 채 될까말까한 공간에 흙으로 지은 화장실과 부엌이 함께 들어 있는 집이다.

정말이고 또 정말이지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이라도 된다면

그보다 더 나아간 역사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 된다면

어디 이런 꼴을 보이겠나

전쟁도 없을 테고 통일도

벌써 오래 전에 다 됐을 테지.

사람이 개 돼지 짐승만큼만 된다면

-고든박골 가는 길2-일부

이 선생은 베토벤의 월광을 칠 만큼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으나 음악을 일찍 포기해 버렸다고 한다. 젊은 교사시절 통영 부근에서 근무할 때 윤이상 선생한테 음악을 배웠는데, 윤이상 선생이 동백림 사건으로 투옥되어 끝내 사면이 되지 않자 스스로 음악을 버리고 만 것이다. 그의 마지막 유고시에 '아름다운 꽃과 음악이 흐르는 땅… 이제 나 그곳에 가겠네.'라는 구절이 비치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이오덕 시인은 우리 아동 문학의 병폐에 대하여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잘못된 교육풍토와 더불어 이원수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 같은 삶의 현실이 녹아 있는 우리의 좋은 작품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신 동심 천사주의나 소공녀, 소공자 따위 국적불명의 외국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허황되게 넋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이제 선생님은 먼 길을 떠나셨다. 선생님은 '내가 할 일'이라는 글에서 어린이를 살리겠다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한 40년 학교생활을 어리석은 일이었으며, 죽어가는 우리말과 우리 겨레를 살리려고 힘을 다 바친 15년의 삶도 어리석었다고 자책하였다.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 이 세상에서 곧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우리에게 이런 유지를 남기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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