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심상보다 못하다(2)
관상은 심상보다 못하다(2)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2.07.14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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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사고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초래하고, 행동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초래한다.”고 역설했고, 아브라함 링컨은 “40세가 지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듯, 관상 등에 따른 운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이다.



- 일심의 지극정성 -

逐鹿者(축록자) 不顧?(불고토)란 말이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에게 한 눈을 팔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사슴을 쫓는 자가 토끼에게 한 눈을 팔지 않아야 하듯, 토끼를 쫓는 자도 마찬가지다. 토끼를 쫓고 있다면 사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야 마땅하다. 사슴에게 한 눈을 파는 순간 쫓던 토기마저 놓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늘 끝이 두 개면 옷을 꿰매기가 어렵듯, 한 마음을 두 갈래로 사용하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티베트의 속담이 있다. 그 어떤 일일지라도 오직 한 가지 일에 지극정성을 다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속담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도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는 없다. 한 마리에 전념해야만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를 원해도, 반드시 한 마리 토끼를 잡고 나서 다른 한 마리 토끼를 쫓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숨도 동시에 들이쉬고 내쉴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들이쉴 때는 오직 들이쉬고, 내쉴 때는 오직 내쉴 뿐이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즉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처럼, 한 마리 토끼를 집중적으로 쫓아야만 그 토끼를 잡을 수 있고, 한 가지 일에 전념할 때 그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음은 당연하다.

실상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 토끼를 쫓지 못하고 동시에 우왕좌왕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어리석은 삶 속으로 추락하는 것은 왜일까? 밥을 짓기도 전에 우물로 달려가서 숭늉을 찾듯, 매사를 쫓기듯이 빨리 빨리 이루려는 성급함이 그 원인이 아닐까?

그리고 성급함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들뜨고 흐트러지고 탁해지고 어두워진 마음, 즉 어리석은 욕심은 목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한 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실패를 불러 온다. 소가 뒷걸음을 치다가 쥐를 잡듯이 욕심을 부려도 한 두 번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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