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을 돌보듯
유리알을 돌보듯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7.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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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곧 여름 방학이다. 덥고 습한 여름의 날씨로 힘이 빠질 때쯤 찾아오는 방학이 고맙다. 기말고사를 마친 고등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집단 상담 의뢰가 들어왔다. 집단 상담은 상담의 형태로 2인 이상으로 구성되어 진행하는 상담이다. 일대일로 진행하는 개인 상담과는 다르게 참여자들의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에서의 역동이 매우 다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청소년기 참여자들은 집단 상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함께 모여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의 의미를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동안 만난 중·고등학생 참여자들은 언어와 행동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자기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로 양분되는 상황을 자주 보였다. 나는 그 이유를 청소년기가 제2의 자기중심적인 시기이기도 하고 자기 탐색에 몰입하는 때이기에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업과 진로의 기로에서 세상과 어떻게 대면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시기여서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아플까봐(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아름다운 사람들)'는 제목에서 조심스러운 주인공을 예측하게 된다. 원제는 `The heart and the Bottle'인데 직역하면 심장과 병이다. 작은 소녀가 주인공인 이 책은, 속지 가득 할아버지와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가득하다. 귓속말을 주고받고, 고양이를 함께 돌보는 등 정겨운 모습이다. 소녀는 할아버지와 함께하며 온통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하늘과 바다의 신비로움을 즐기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며 기뻤다, 그때 소녀의 심장은 뜨겁게, 살아 꿈틀거렸을 것이다.

소녀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발견한다. 소녀는 마음(심장)이 아플까봐 병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닌다. 그러자 마음은 아프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다. 별과 하늘에 대한 관심도 세상에 대한 열정도 호기심도 없어졌다. 소녀는 자라고 병은 점점 무거워져 불편했지만, 마음만은 안전했다.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를 만나자 소녀는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마음이 없어 말하지 못한다. 소녀는 병에서 마음을 꺼내려 하지만 할 수 없다. 작은 아이가 병에서 마음을 꺼내주었을 때 마음은 제 자리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이 참 좋다. 할아버지의 의자에 앉은 소녀의 표정과 드넓게 펼쳐지는 소녀의 열정과 호기심이 안심하게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소녀처럼 병에 담는다. 마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소녀의 목에 걸린 병은 매우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나는 강연에서 사람을 자주 유리알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소중히 다루어야 할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에 병을 건다는 것은 병이 깨질까 봐 가까이 두고 지키려는 모양새다. Heart를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그림책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병 안의 심장 그림은 그림책을 보는 내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심장을 목에 건 소녀처럼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움을 병에 넣는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행동과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괜찮은 척 애쓰지만 불편한 것들이 많아서인지 표정은 경직되고 작은 일에도 방어적으로 되어 강하게 반응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고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마음이 아플까봐 그런다. 우리는 이것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로 인해 타인의 진심이나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집단에 가면 느끼는 묘한 기운들이다. 환대하기보다 경계하는 모습이 크다. 어떻게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내 눈에 그들은 소중하게 다뤄야 할 작은 유리알이다. 유리알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고 그 안의 것들을 비춰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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