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지폐에 별자리가 왜 이 모양이야?
만원짜리 지폐에 별자리가 왜 이 모양이야?
  •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 승인 2022.07.13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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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원권 유통 수명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긴 편으로 약 4년6개월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올바른 화폐사용 습관은 칭찬할 만하다. 그런데 2007년 무렵, 첨단 위조방지장치가 적용되면서 세종대왕의 초상과 혼천의가 새로운 도안 소재로 적용되어 발행됐고 이때 들어온 다양한 디자인에 대하여 많은 이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 중 과학사 측면에서 두 가지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독창적 과학창조물인 혼천시계는 국보 230호로 조선 현종 10년에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것이다. 이 혼천시계는 혼천의와 중력식 자동시계장치가 결합되어있는 것인데, 혼천의는 중국에서 유래된 천문관측기구로 시계가 운행될 때 부속되어 돌아가는 부품에 불과한 것으로, 핵심 과학적 원리는 중력식 자동 시계장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원권 지폐에 혼천의만 따로 떼어 도안으로 사용함으로써 마치 혼천의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과학유물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혼천시계의 박스형 디자인이 화폐에 어울리지 않아서 보조 소재로 혼천의를 넣었다고 설명했지만, 과학사적인 의미는 간과했다는 말에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지폐 속 혼천의는 우리나라 독자적으로 개량한 혼천의임으로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만원권을 접하게 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혼천의가 우리나라 것으로 보이고, 혼천시계의 창의성은 간과되어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 4년 고구려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이다. 즉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별자리 그림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전 하늘의 별자리를 담은 천문도이다.

그런데 만원짜리 지폐 뒷면에 실린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의 내용이 원본의 내용과 너무나 크게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혼천의 바탕면에 깔린 별자리 그림에서 작은 원들과 선분들의 구성 형태와 모양이 육안으로 볼 때도 원본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각 별자리 배치와 모양,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의 개수, 별들 간의 거리, 각 별의 크기(즉 밝기) 등 너무나 다르다. 한국은행과 조폐공사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약식으로 적용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현재 그대로 유통하고 있다.

한글의 위대함이 만원권 내에 숨겨져 세종대왕의 옷깃에도 들어가고, 조선시대 임금의 상징물인 일월오봉도도 잘 배경으로 포함되어 있으며(물론 약식도 아니고, 한쪽만 따로 떼어낸 혼천의만을 넣은 것도 아닌) 조선시대 시가이자 최초의 한글 작품인 용비어천가도 배경에 잘 녹아 들어가도록 구성된 만원권이 유독 과학사적 유물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한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학문화재가 가진 과학성을 간과해 매일 사용하는 만원짜리 화폐를 통하여 그릇된 과학적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닌지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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