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
연필 한 자루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7.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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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여행이 그리운 계절이다. 내가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쌀 때면 언제나 필통은 빠뜨리지 않는다. 필통에는 볼펜 외에도 연필과 커터칼도 꼭 넣고 다닌다. 샤프가 깔끔하긴 하나 깎아서 쓰는 연필이 왠지 더 정감이 간다. 번거롭긴 하지만 연필을 깎다보면 초등학교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나는 유난히도 손재주가 없었다. 예를 들어 찰흙으로 작품을 만드는 미술시간이면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재주가 필요한 건 미술시간 뿐이 아니다, 연필을 깎는 일도 그렇다. 물론 모든 친구가 연필을 예쁘게 깎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보다 모양을 이상하게 깎는 친구는 드물었다.

요즘 나는 그림 그리는 수업을 받고 있다. 첫째 시간은 소묘 시간이었다. 연필 하나만으로도 멋진 그림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수업에 앞서 강사님은 자신이 지난 주말 여행을 가서 그린 것이라며 그림 한 점을 보여 주었다.

분명 풍경화는 맞는데 연필 하나로 그린 작품이었다. 어떠한 색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 근사했다. 연필만으로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놀라웠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체 뿐 아니라 작품에 대화체를 넣으면 글이 한결 현장감이 느껴져 생생함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은 무엇으로 생생함을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명암이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밝고 어두움이 나의 눈과 마음을 미혹했다. 평화로운 강가의 모습과 들러리로 서 있던 나무들과 그림자까지, 정말 신비로웠다. 화가들의 눈에는 자연의 빛도 시시각각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만약 연필 한 자루가 혹자들의 손에 있다면 무엇을 할까. 각자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연필 한 자루는 그 쓰임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에 아기기 첫돌을 맞을 때면 돌잡이 상에 연필은 꼭 빠지지 않는 물건이었다. 부모들은 은근히 자신의 아기가 연필을 잡아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기가 연필을 잡으면 집안에 박사가 나오겠다면 환호성을 질렀던 시절, 그만큼 연필의 의미는 아이의 공부를 넘어 부모의 자존심이 되었던 듯하다. 요즘은 펜 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많기는 하다. 그럼에도 펜으로 쓴 원고지가 사람의 키만 큼 쌓인 문학관의 진열대 앞에 서면 어김없이 우리는 그 위대함에 저절로 숙연해 지곤 한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시간의 위대함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을 배웠다. 칸을 나누어 각기 다른 선으로 그린 그림이 제법 멋있게 그려졌다.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데,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비슷하게 수업을 하신다며 강사님은 아이들의 그림을 보여줬다. 이럴 수가, 아이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들을 그렸지 않은가. 그림이 재미도 있고 멋졌다. 틀에 잡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본 대로 배운 대로 그리고 있는 내 그림과는 정말 다른 그림이었다. 좌절을 맛보고야 말았다.

하기야 우리 세대는 하늘은 파란색, 나무는 초록색, 땅은 황토색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틀을 만들어 놓고 가르치고 배웠으니 그 틀을 깨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겠다. 이제부터라도 그림을 처음 배운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을 해 보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내 여행 가방에는 이제 노트북 말고도 스케치북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부터 설렌다. 연필 하나로 세상이 그려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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