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속 여자들의 이름
흑역사 속 여자들의 이름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7.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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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서운'이란 이름을 가진 분이 계시다. 언젠가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관계로 한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배님은 세련된 이름을 가졌네요. 그때 그 시절엔 너나 나나 모두 아들 자(子)자를 썼는데 말에요, `이 서운', 물 흐르듯 부드럽게 발음되는 것 하며,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인 `子'자를 쓰지 않아서 넘 좋아요,” 했더니 이상하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묻는다.

“서운이란 이름의 내력을 몰라서 묻는 거니?”

“예쁜 이름인데 내력씩이나 있나요?”

이름 바꾸려고 신청한 상태라면서 강조하듯 한마디 툭 던진다.

“서운해서 서운이란 말이야”

아, 아들 아닌 딸을 낳아서 섭섭한 마음인 `서운'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했던 시절의 여자이름들에 남아있는 흔적 중 하나가 `서운'이란 이름인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 전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러 전주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마침 토요일, 군데군데 빈 침대가 있는 넓은 병실에 그나마 장기 입원환자인 교통사고 환자마저 외출한 뒤라서 7인실 넓은 병실은 어머니와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다.

송 순달. 침대에 매달려 있는 환자 이름표의 어머니이름을 보다가 쿡쿡 웃는다. 그동안 순달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원불교 법명인 송경진 여사로 통용되고 있어 순달이라는 이름은 호적에 등재된 본명이어서 내겐 낯설기만 했다.

어머니의 아버지, 외조부는 석 달 반 유복자였단다. 증조 외할머니께서 시집오실 때 데리고 온 몸종(하님이라 불렀다 함) 할머니와 함께 유복자 아들 하나 키우며 적적하게 살다가 그 아들이 성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야말로 집안은 날마다 웃음바다였단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년 만에 집안에서 아기 소리가 났으니 금자동이 은자동이 말 그대로 천하에 없는 할머니의 손자였을 것이다. 이어서 어머니가 태어났으니 귀여움은 물론 동네잔치를 할 정도로 하님과 할머니의 공주로 조선에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오로지 하나인 순전한 딸이라고 순달이라 했단다.

딸은 하나만. 하지만, 원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 그리 많던가? 원하지도 않는 데 이어서 또 딸을 낳으니 이제 더 딸은 없다고 무 딸. 그래서 둘째 이모는 무달이, 그런데 셋째도 또 딸을 낳았으니 또 딸, 이름하여 도달이 이모다. 그런데 또 네 번째 이어서 또 딸을 낳았다. 하늘도 무심하다고 원망했을까? 이제는 단념할 수밖에 없다고 하늘의 뜻을 받든다 해서 봉례. 그런데도 하늘은 무심해서 다섯째 딸은 아예 남자이름인 `동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자에게 남자이름을 갖게 하면 사내동생을 본다는 솔깃한 속설에 기인한 사내이름을 붙여주었음에도 더 이상 아들도 딸도 낳지 않으셨다.

순달, 무달, 도달, 봉례, 동수. 여자들의 값어치가 얼마나 없었기로 그토록 딸을 낳지 않으려고들 했을까? 남자 아래 여자, 아들이 딸들 우위에 군림하던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이름들을 가만히 다시 뇌어본다. 그때 그 시절의 흑 역사가 고스란히 벤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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