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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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 한 <행동하는 복지연합 공동대표>

요즘 심심치 않게 상생(相生)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상생의 길, 상생경영, 상생의 노사문화, 상생정치, 상생의 법칙 등 그 예는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처럼 상생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은 화합해 함께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상생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이 세상이 상생의 삶 보다는 상극(相剋)의 삶을 살아왔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면 상생과 상극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본래 상생(相生)이나 상극(相剋)이라는 말은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행설에 의하면 금(金)은 수(水)를, 수는 목(木)을, 목은 화(火)를, 화는 토(土)를, 토는 금을 나게 하기에 둘의 관계는 상생의 관계라 설명한다. 반면 목(木)은 토(土)를, 토는 수(水)를, 수는 화(火)를, 화는 금(金)을, 금은 목을 이기기에 이들의 관계는 상극이 된다.

여기서 상생이나 상극의 관계는 둘의 관계가 아니라 모두의 관계임을 볼 수 있다. 즉 쇠는 물과 상생이나 물은 나무와 상생이며 나무는 불과 상생이다. 불은 흙과 상생이며 흙은 다시 쇠와 상생이 된다. 그런데 쇠와 물, 물과 나무는 상생인 반면 쇠와 나무는 상극이다. 또한 나무와 불, 불과 흙은 상생인 반면 나무와 흙은 상극이 된다. 마지막으로 흙과 쇠, 쇠와 물은 상생이지만 흙과 물은 또한 상극인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느 관계가 상생이냐 혹은 상극이냐가 아니라 다섯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상생이나 상극의 관계 또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필자는 오행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생은 좋고 상극은 나쁘다는 이분법적 논리는 분명 맞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물과 불은 상극이나 조화를 이루면 따뜻한 물이 되어 우리들의 삶에 도움을 준다. 그 역할을 보아도 물은 더러움을 씻어 정화하고 불 역시 불순물을 태워 정화한다. 또한 사랑의 부족함을 메마르다 하여 물의 부족함으로 표현하고 불 역시 그 열로 추위로 녹이는 따뜻한 사랑에 비유된다.

아울러 물은 자신의 길을 찾아 흐르며 불 또한 어둠을 밝혀 올바른 길을 찾게 해준다.

사실 상극의 관계를 잘 활용하면 우리 삶에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즉 나무를 심어 흙의 유실을 막고, 둑을 쌓아 물을 다스리며, 물로 화재를 막고, 불로 쇠를 제련하며, 톱이나 대패로 나무를 다듬어 가구를 만드는 등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상생이니 상극이니 하는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를 인정해 존중하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을 앞둔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분배와 성장, 평등과 자유, 노동자와 자본가, 민과 관 등은 상극의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 없는 여당은 독재에 불과하며, 진보 없는 보수는 수구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분배 없는 성장은 오히려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이며, 평등 없는 자유는 이 사회를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자연법칙만이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곳으로 변질시킬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상극이나 상생은 서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로 서로를 바라다보는 시각에 따라 상극이 상생이 될 수도 있고 상생이 상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불신과 반목이 만연한 현재의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상극의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승화시키는 조화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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