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가시고기
큰가시고기
  •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 승인 2022.07.0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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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강어귀로 큰가시고기가 달려온다. 아비로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등 쪽에는 푸른색을 띠고 예리한 가시가 달려 있다. 배는 붉은색을 띤다. 보금자리 지을 곳을 찾는다. 갈대뿌리 근처에 둥지를 만든다. 주둥이로 모래알을 물고 둥지 밖으로 던진다. 주둥이가 일그러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랫바닥에 점액질을 토해내면서 단단히 뭉친다. 보금자리를 물풀들로 위장을 해 다른 적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한다. 집 근처에 물고기들이 다가오면 등가시를 곤두세운 채 쫓아가서 사정없이 몰아낸다.

수컷은 암컷을 찾아 나선다. 배가 두툼한 암컷 주위를 맴돌며 구애를 시작한다. 부드러운 왈츠를 추기도 하고, 날렵하게 지느러미를 흔들며 현란한 몸짓도 한다. 몸을 비틀어 혼인색으로 암컷을 유인한다. 암컷 한 마리가 따라오면 애써 만든 둥지로 와서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자랑한다. 대궐 같은 집안으로 들어온 암컷이 알을 낳는 동안 수컷은 주둥이로 계속 등 쪽을 두드려 준다. 알을 쏟아낸 암컷은 둥지를 나와 멀리 가버리면 수놈은 재빠르게 알에 정액을 뿌려 놓는다. 그 순간부터 수컷은 잠시라도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큰가시고기의 새끼 돌보는 정성은 눈물겹다. 잠도 자지 않고 지느러미로 부채질을 하며 산소를 공급한다. 한순간도 둥지 곁을 떠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신선한 물을 둥지로 보내는 데 있는 힘을 다한다. 일주일 정도면 수정란이 부화하고 아비 가시고기는 입구를 지키며 밖으로 나온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 둥지 안으로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혹여라도 다른 물고기들이 접근하면 가시를 곤두세운 채 몸을 흔들며 사력을 다해 쫓아낸다.

새끼들이 자라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수컷은 서서히 죽을 채비를 한다. 모래알을 다지던 주둥이는 볼품없이 헐었고, 움직임도 힘이 빠져 중심을 잡지 못한다. 몸의 푸른색은 퇴색했고, 지느러미의 부채질은 약해졌다. 새끼들의 부화를 위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혼신을 다해 돌보던 수컷은 생애를 마감한다. 끝내 아비의 주위로 모여든 새끼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이것이 가시고기의 헌신적인 부성애에 숙연해진다.

팔순이 넘도록 고된 농사일에 땀을 흘리며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남자라는 이유로 힘들어도 힘들다는 표시를 하지 못하셨다. 뜨거운 여름날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셨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근육은 마르고 건강은 쇠약해져 갔다.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치아는 거의 망가졌다.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는 합죽이다. 그래도 자식 사랑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 침묵의 사랑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내 아버지의 사랑이 가시고기의 사랑이었다.

물속에 사는 어류들은 모성애보다는 부성애가 훨씬 강하다. 대문이 있는 집이 없기 때문에 양육은 수컷들이 담당한다. 힘이 센 수컷이 천적을 막아주기에 유리하다. 죽은 큰가시고기의 살을 뜯어 먹고 자란 새끼들은 여름이 되면 바다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아비 가시고기가 그랬듯이 부성애의 역사를 또다시 이루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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