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까막눈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7.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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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에잇,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당황스럽다. 내가 지금 무얼 본 건지 믿기지 않는다.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그이의 손에 반지가 들려져 있다. 기어코 그이가 나서서 심란했던 사태가 끝이 났다.

소마소마하던 마음이 가라앉자 멍해진다. 늘 두는데 잘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뚱맞을 수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마터면 쓰레기와 함께 버려질뻔한 상황이었다.

이 반지는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사 준 반지다. 녹록하지 않은 살림을 잘 꾸려내 준 긴 시간에 대한 보상의 의미였다. 처음으로 값나가는 것을 끼워보기에 애지중지하던 터였다.

집일을 해야 하는 시간부터는 고이 모셔둔다. 이런 데는 일을 할 때 걸리적거리기도 하지만 물때가 낄까봐서다.

일을 끝낸 뒤 씻고 나와 우연히 눈길이 갔다. 당연히 있어야 할 반지가 없다. 분명 거기에 놓았는데 보이질 않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디 있겠지 하던 마음은 나오지 않자 점점 더 불안이 커져간다. 서서히 천불이 지펴진다. 속이 화끈화끈하다.

화장대를 샅샅이 뒤졌다. 서랍을 열어 눈에 불을 켜고 보아도, 안방을 다 살펴도 아무데도 없다.

내 행동이 이상한지 그이가 묻는 말에 한소릴 들을 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반지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이실직고 했다. 그이가 내가 지나간 곳마다 다시 훑는다. 허탕을 친다. 그러다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까.

그이는 마지막으로 쓰레기통을 뒤졌다. 설마 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반지가 문제가 아니라 끙끙 앓을게 뻔하여 두고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속앓이를 할 내가 더 염려스러웠다고 한다. 맞다. 그이가 자는 동안 미련스럽게 혼자 밤새 찾아볼 심산이었다.

이런 일은 또 있었다. 길을 가다가 들꽃의 유혹에 못 이겨 꽃을 꺾고 손에 들려져 있던 열쇠는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려고 할 때서야 비로소 열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찾아보았다. 여러 번 오고 가고를 했건만 눈에 띄지를 않는다. 결국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이가 나서고서야 풀숲에서 대번에 발견했던 것이다.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시력은 내가 더 좋은데 왜 그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이런 나를 두고 “까막눈”이라고 놀린다.

그이 역시 까막눈이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일을 못해 나를 볶아댄다. 제주도를 갈 때마다 항공권을 예매할 때에도 성가시도록 조른다. 인증을 거쳐야하고 여러 가지 입력을 해야 하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싫어한다. 아예 할 생각조차 않는다. 그런 그에게 나도 똑같이 되돌려준다. 컴퓨터 까막눈이라고.

우리는 서로를 까막눈이라고 부른다. 가까이에 있는 글씨를 잘 보는 나와 먼데 것을 잘 보는 그. 무얼 두고 찾아대는 나와 금방 찾아내는 레이더 손을 가진 그. 물건을 사고 사용설명서를 보려면 막막하여 나를 불러댄다. 귀찮아도 대신 소리 내어 읽어주는 이유가 있다. 오늘처럼 구세주가 되는 날이 있으니 큰소리 칠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24평의 공간에 두 까막눈이 산다. 지금껏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살고 있었다. 내가 그의 눈이, 그가 나의 눈이 되어주고 있었다.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전설속의 새. 밝은 눈과 힘찬 날개를 갖고 있어도 혼자서는 볼 수도, 날 수도 없는 새. 다른 한 쪽을 가진 새를 만나야 멋지고 아름다운 새로 변신하는 새.

꿈속에서도 반지를 찾아 헤매느라 지친 내 눈앞에 비익조가 홰를 치며 비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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