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멸하는 것들
피아노, 소멸하는 것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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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아내가 피아노를 팔았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를 아내는 팔지 못했다. 집에 있던 피아노를 중고로 팔려고 했으나 아무도 사 갈 사람이 없어 돈을 주고 피아노를 `제거'했다.

아내에게 피아노는 한동안 `존재의 이유'였다. 꽤 오랫동안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내 밥벌이의 곤궁함을 모면하게 해 준 반려와 다름없다. 아내에게 피아노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가치였다.

집안에서 피아노가 `제거'됐다는 건 그녀 역사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것임을 나는 모르는 척 할 뿐이다.

그렇게 피아노가 `소멸'된 자리를 아내는 밤샘 근무도 마다할 수 없는 불안한 쪼개기 계약 노동자의 처지로 버티며 나를 비롯한 가족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피아노의 `소멸'이 어디 내 집만의 일인가. 동네마다 몇 개씩은 있던 피아노학원은 수소문해도 쉽게 찾을 수 없고,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도시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층간소음의 비난과 위협을 견디지 않고서는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잘 들을 수 없고 디지털화된 재생장치에 의존하는 간접적 대리만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청소차에서 들리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슬그머니 사라진 이유도 `소음'으로 몰아부치는 민원 때문이다. 그러니 일상에서 음악은 멀어지고, 특정한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쯤으로 차단되면서 세상은 또 다른 벽을 만들고 있다. `소멸'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의해 가속화된다. 단지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것 만이 아니라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지독한 `소멸'이라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는 나도 `밥은 굶을 수 있으나 음악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청년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심취했던 음악은 팝송이었는데, 월간지를 정기구독하고 팝의 역사를 따로 공부했을 정도로 극성의 몰입을 했다는 기억은 여태 훈훈하다.

공자처럼 「`제나라에서 `소'라는 음악을 듣고 3개월 동안이나 고기 맛을 모를 지경`, `음악을 감상하되, 미처 이에 이를 줄은 몰랐다.' (子在齊聞韶,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논어>」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음악을 삶의 전부로 여겨왔으니, 그야말로 찬란했으나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벨에포크 시대였다.

집에서 피아노가 `소멸'된 이후, 아주 가끔 내려와 단 몇 분 동안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딸들의 흔적도 희미한 데, 18살의 국내파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북미 최고 권위의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2022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우승 소식을 듣는다. 1962년에 시작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보통 4년 주기로 개최된다. 앞서 선우예권이 우승한 2017년 제15회 콩쿠르에서 선우예권 우승 이후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잠정 연기된 이후 5년 만에 열린 대회에서 한국인의 연이은 우승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토록 커다란 의미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허전한 건 단지 집에서 사라진 피아노와 함께 아내의 소멸된 역사와 단절된 가족들의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음악은, 피아노는 벌써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특별한 사람들이 향유하는 `질'로서의 가치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경연대회에서의 성과는 한국인 특유의 DNA로 포장되는 한계는 더 이상 아름답지도 자랑스럽지도 않다.

예술은 허약하고, 격렬하며 총체적으로 다투는 입시교육으로 완벽하게 가려진 세상에 피아노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자리는 없다.

철학자 김진영은 목숨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아침의 피아노>를 놓치지 않는다. 피아노 소리에 눈물 흘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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