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의 변천
주거의 변천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7.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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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요란한 새소리가 귓전에 가깝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새들의 요란한 움직임 때문이다. 당연히 머무는 집은 나뭇가지 사이거나 덤불 속에 있으려니 짐작하던 터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활개치며 날아오르는 곳이 커다란 교각 사이로 옮겨가기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상상 외였다. 집을 교각의 상판 틈 사이에 두고서 드나들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마리가 이곳저곳 나란히 집을 마련한 듯싶었다. 마치 아파트 베란다를 둔 것처럼 말이다. 그제 사 궁금해하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그곳을 유심히 올려다보며 어쩜 저렇게 영특한지 고개가 저어질 정도였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젖어들지 않는 안전한 콘크리트 집을 두었으니 놀라울 뿐이었다.

문득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집의 형태가 떠오른다. 저 멀리 태고적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주거형태까지 짧은 지식으로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리하고 쾌적하기 위해 발전해온 역사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어서다. 집이란 그렇게 삶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가 새롭기만 할 뿐이다.

내가 태어난 집은 초가집이었다. 지금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의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아이와 젊은 세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소할 것이다. 현대화된 주거에서 한 조각의 추억이라고 할 만큼 그때를 돌아보노라면 따뜻한 잔영들의 물결이 가슴에 밀려드는 것을 막아낼 수가 없다. 훠이훠이 양손을 저으며 달려가는 꿈을 꾸기도 한 한다.

집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은 참 고즈넉하다. 겨울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어떤 조형물보다도 특별한 느낌이 되어 눈길을 잡아두고는 했다.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도구가 되기도 했던 추억이 새롭다.

해 질 녘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던 마을의 풍경도 잊을 수가 없는 한 폭의 수채화라 하겠다. 이집저집 몽실몽실 피어나던 굴뚝의 연기가 한 폭의 그림으로 아직까지 가슴에 인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없는 정서를 불러온다.

또 하나 바람 부는 날이면 문설주에 매달려서 윙윙대던 문풍지 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자극해온다. 때로는 울음소리로, 때로는 노랫소리로 어린 나의 감성을 일깨워주고는 했다. 햇살 환해지면 문고리 가까운 창호지속에 가두어둔 울안의 꽃이 다시 피어나 평화를 주던 모습은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가슴 밑바닥 잠재해온 모든 것들이 문득문득 그리움을 몰고 와서는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키워가는 문학의 씨앗이 그때부터 잉태되지 않았었나 싶다.

바람과 햇볕은 공간을 초월하며 드나든다. 살아 있으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피부에 닿아 만질 수 있게도 하고 느낄 수 있게도 해준다. 한 부분 삶의 의욕과 희망을 몰아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빚어내는 모양과 크기도 다르다는 것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듯 함께 어우러진 자연과 사람에게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만, 더디 알았을 뿐이다. 안전을 위해 지혜로이 교각 밑에 둥지를 튼 참새에게 한 수 배우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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