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나?
이제 우리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나?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7.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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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자유가 보장된 나라, 말만 들어도 좋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감사를 우리는 모른다. 부드럽고 달콤한 자유란 말을 곱씹으면 초콜릿 맛이 난다. 달콤한 맛을 느껴지기까지는 우리를 살짝 긴장하게 하는 책임과 의무가 동봉되어 있다. 무한히 일탈하려는 습성을 잡아주는 질서는 너, 나, 우리를 평화로운 세상을 안내하는 길라잡이다.

가끔 어학사전에 표기된 자유, “남에게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러한 상태”를 오인하는 사람을 만난다.

자제나 절제 없이 인간의 추한 근성을 민 낯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유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와 인권을 외치며 당당한 N 걸인들의 행보는 행인을 아주 불편하게 한다.

자유, 평등, 인권을 외치던 20세기 억척스러운 청년 시대도 저물었다. 세월이 남긴 흔적은 오로지 자본의 욕망과 이데올로기뿐이다. 자본주의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흙수저, 금수저의 삶이 같을 수 없고, 이를 직시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국제무대에서 열등감을 느꼈던 우리가 이제 백인도 고용하는 시대다.

21세기 부활해야 할 것은 바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시민의식이다. 명석한 두뇌와 신이 준 자연환경에서 아직도 으르렁거리는 정치 세계는 멀기만 하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금껏 투쟁한 것이 고작 상대편을 감시하며 결점을 잡아, 흠집을 내는 정치판이었단 말인가? 하향평균화를 외치며 곤두박질 치는 것이 비단 정치 세계만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부터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자숙하며 숙고해야 할 시대다.

길어야 백년인 생에 뭘 그리 치졸하게 사는가? 몇 세대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인들의 언쟁이 어쩌면 국민의 이데올로기만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딸랑거리는 정치판이나 본인의 노력 없이 권력의 끈을 잡고 세금을 축내는 소시민이나 아직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정신적으로 과도기에 놓인 우리는 권력 앞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세상에 블루오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 정인지 부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흔들린다.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집단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밥그릇만도 못한 권력과 욕망의 밥그릇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쌀 한 톨에도 숙연해지는 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 밥그릇에 공손히 손이 간다.

`추운 겨울 어느 날/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사람들이 앉아/밥을 기다리고 있었다/밥이 나오자/누가 먼저랄 것 없이/밥뚜껑 위에 한결같이/공손히/손부터 올려 놓았다'

용비어천가를 부를까나? 농가월령가를 부를까나? 어느 장단에 맞춰 리듬을 타야 하나? 배부르다고 밥그릇 함부로 차지 마라. 한때 우리를 지탱하던 떨걱거림이 아닌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여 집단의식이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말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슬픈 패거리들이여, 이제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땀을 흘릴 때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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