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폭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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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심 억 수 시인

오늘이 처서라지만 더위는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기세가 등등하다. 처서에 비가 내리면 곡식이 줄어 흉년이 든다는 옛말이 있지만, 한 줄기 비라도 내려 처서의 낱말처럼 더위가 처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이면 땀이 많이 나고 지쳐서 여름나기가 힘들다. 이렇게 더위가 계속될 때 선조들은 여름을 어떻게 이겼을까 궁금해 졌다.

어린 시절 더위를 팔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동네 형들이 하니까 따라 한 것에 불과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여름을 잘 나기위한 속신이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 하였고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않고 미리 "내 더위 사가라"하고 친구들을 골려주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또한 여름이면 이열치열 이라고 어른들을 따라 냇가에 나가 민물고기를 잡아 솥을 걸어놓고 매운탕을 펄펄 끓여먹던 맛도 잊혀지지 않는다.

폭염 주의보가 내린 요즈음 더위를 먹었는지 무기력하고 소화도 잘 되지않아 고생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더위에 심신이 지칠 때는 삼계탕이 최고라며 닭을 사다 인삼, 마늘, 밤, 대추, 호박씨, 찹쌀 등을 넣고 나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면서 음식 만들기에 분주하다. 옛날에는 잘 사는 집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 같은 서민층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내의 모습을 보며 삼계탕이 정말 여름철 보양식인지 궁금하여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았다. 동의보감에서는 "닭고기는 허약하고 여윈 것을 보해주며 속을 따뜻하게 하여 차갑고 습한 기운으로 생긴 소화기능 이상을 치료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삼계탕에 넣는 인삼은 체내 효소를 활성화시켜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 회복을 앞당긴다. 마늘은 강정제 구실을 하고, 밤과 대추는 위를 보하면서 빈혈을 예방하고 호박씨는 호르몬을 원활하게 배출하면서 기생충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삼계탕은 뜨거운 음식이므로 평소에 열이 많거나 고혈압 뇌졸중 등 뇌심혈관질환이 있는 사람은 먹으면 안 된다." 책을 열심히 뒤적이는 나를 보며 아내는 예로부터 우리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슨 책을 찾아보며 음식을 먹느냐고 구박이다.

그저 막연히 보양식으로 알고 먹었던 삼계탕이 체질에 따라 해가 될 수도, 약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조상들의 지혜로움에 절로 감탄스러워지기도 했다.

잠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더니 어느새 해가 반짝 났다. 잠깐 비낀 소나기 덕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폭염일지라도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 계절은 처서를 지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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