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의 복
복중의 복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7.0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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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이는 불혹의 나이에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다. 일복만 있는 줄 알았던 찬실의 현생에 새로운 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 주인공 찬실은 어두운 밤길을 내려가는 후배들의 앞길을 손전등으로 비춰주며, 먼저 내려가라 한다. 그리고 환한 보름달 앞에서 눈을 감고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문장의 주어가 `나'가 아닌 `우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찬실에게 `복'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작가 아나이스 보즐라드의 작품<돌멩이 수프>에 나오는 닭은 이웃과 함께함으로 음흉한 늑대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배고픈 늑대가 돌멩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초식동물의 집에 문을 두드린다. 돌멩이 수프를 끓여 준다며 경계를 푼 틈을 봐서 먹잇감을 잡아먹는 사냥을 즐긴다.

날카롭고 음흉한 눈빛을 하고 닭을 위해 수프를 끓이는 행동은 어색하다. 난로 앞에서 돌멩이를 주섬주섬 꺼내며 칼로 닭의 목을 칠 기회를 노릴 때 돼지가 “별일 없니?”하고 찾아온다. 늑대가 닭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이다.

돌멩이를 넣고 끓이는 동안 닭과 돼지의 제안으로 셀러리와 호박을 넣는다. 그러는 사이 거위, 말, 양, 염소, 개가 찾아와 한자리에 돌멩이 수프 만찬을 연다.

늑대는 손수 수프를 떠 동물들에게 맛을 보여준다. 동물들은 “전부 다 같이 있으니까 참 좋다!”라고 말한다. 늑대 덕에 마을 동물들은 즐겁고 따뜻한 저녁을 즐긴다.

늑대가 원한 것은 닭을 넣은 수프 요리였다. 닭을 잡을 수 있는 타이밍에 동네 사는, 닭네 집에 늑대가 들어가는 본 이웃들이 찾아오면서 늑대의 계획엔 차질이 생기고 닭의 깃털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조현 작가는 `혼자 살기는 외롭고 함께 살기는 괴로운'게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혼삶이 대세가 되어가는 추세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공동체를 찾아 소개한다. 사유재산을 비롯해 주거, 식사, 육아 등 특성에 따라 공동체의 형태와 운영이 모두 다르다. 저자는 `함께 산다는 것'의 강점을 `치유'와 `행복'에서 찾는다. 한가지 더하자면 `서로 돌봄'이다.

역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찬실이의 절망이 다시 희망이 되고, 늑대의 한 끼 식사가 될 뻔한 닭의 안전은 이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프레임을 정해준다. 젊은 층은 인생을 스타를 모방하는데 시간과 돈을 쓰고 중년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여전히 드러낸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수레바퀴 아래 있으면서도 그곳을 빠져나올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다. 피로에 젖어 평화를 갈구하지만, 욕망을 버릴 생각은 없는 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대안으로써 함께하는 공동체를 생각해본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란 말이 있다. `물에 비춰보지 말고 사람에 자신을 비춰 보라'는 말이다. 사람에게 자신을 비춰보는 것은 관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 사람 속에 비친 내가 아름다우면 나는 그 사람의 좋은 사람이다. 닭이 걱정되어 그의 집을 찾아갔던 이웃처럼, 찬실의 인복(人福)처럼,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상상한 많은 것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 낸다면, 그런 사람들 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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