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꽃밭
아버지의 꽃밭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6.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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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채송화가 예쁘게 피어나는 때가 되었다. 길을 걷다 만나는 노랗고 빨갛고 하얀, 키 작은 채송화는 콧노래를 부른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어릴 때부터 자주 부르며 좋아하던 이 노래에는 아버지에 대한 나의 추억이 들어있다. 아버지는 꽃과 나무를 참 좋아하셨다. 작은 집이었지만 대문 옆, 수도 옆, 화장실 옆 조그맣게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장미, 채송화, 찔레꽃, 목단 등을 가꾸셨다. 때가 되면 순서에 맞춰 피어나던 꽃들은 나에겐 언제나 아빠였다.

전소영 작가의 `아빠의 밭(달그림)'은 작년 여름 북 토크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게 된 그림책이다. 퇴직한 아버지가 그의 부모님이 일구던 밭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이야기다. 작가가 그린 아버지의 뒷모습과 일하는 모습에 내 아버지가 겹쳐 보이며 그리움이 올라온다. 아버지의 손길이 머무는 곳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밭의 풍경은 너무나 정겹다. 자연 위에 펼쳐지는 할아버지 아버지 작가, 3대의 연속되는 삶의 모습을 보면 편안해지며 절로 마음이 깊어진다.

모임에서 또는 방송에서 오도이촌, 귀농, 귀촌, 세컨하우스, 한 달 살기 등의 삶을 동경하는 모습을 자주 듣고 본다.

인생 2막 또는 나이 든 사람들의 로망인가 싶었던 문화가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

농가주택은 인기가 많아 물건이 나오면 매매가 곧바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하고, 마당 관리가 힘들다며 시멘트를 부어 흙마당을 없앤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뜨락, 마당이라 불리는 공간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페가 쉼과 놀이의 공간이 되고 제2의 공간을 갖고자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휴식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문명에 익숙해져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이지만 그 밑바닥 아래의 무의식에서는 가장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곳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문화의 기류는 그림책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자연을 담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사람들은 바다, 산, 하늘과 같은 공간을 담는 책들을 찾고 위안을 얻는다.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그 반대의 자연적인 것을 소망한다. 사고에서 몸으로, 동적에서 정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자 한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는 도시 여자다.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엄마의 정원'을 꿈꾼다.

마당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옮겨 심을 날을 소망하며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게 무화과와 목수국을 키운다. 드디어 소망하던 엄마의 정원을 실현할 공간이 생겼다. 그곳에 처음으로 선 날, 아버지가 생각나 한참을 서 있었다. 아버지는 노년기에 들어서며 시골의 작은 집을 사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고향이 아니어도 아는 이가 없어도 좋다 하셨다. 커다란 품으로 가고 싶어 한 아버지의 소망이 생각나 마음이 저릿했다. 아버지와 같이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인즈 코헛의 이론에 의하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중요한 이상화 자기 대상이다. 아동은 성장하면서 양육자 중 특히 아버지를 이상화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모방한다. 이상화 자기대상이 내면화되면서 건강하고 안정적인 이상적 자기를 형성하게 될 때 자아존중감을 획득한다.

나는 이상적인 삶을 늘 꿈꾼다. 언제나 그 꿈에는 책을 읽고 메모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잠이 깨어 눈 비비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나무와 꽃에 물을 주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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