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만 기술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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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6.29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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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기술만 있으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고 했다.

정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상사 눈치 보며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니 기술이 곧 노후 삶을 책임질 것이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기술보다는 학력이 삶을 바꾸고 학교 간판이 성공의 열쇠로 통하는 요즘 고졸 신화라는 말을 들어본 지도 오래다.

요즘 교육계가 때아닌 반도체 열풍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학마다 반도체 관련 학과 개설을 추진하느라 분주하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뚝딱 산업 인재가 만들어졌다면 산업 현장이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정치권에서는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마법이 통하니 반도체 바람은 한동안 불 모양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개한`2021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제조업과 서비업종의 부족 인력은 3만 6450명으로 집계됐다. 분야별 부족인력을 보면 소프트웨어 6188명, 전자 5387명, 화학 4130명, 기계 4068명, 자동차 2290명, 반도체 1621명이다.

특정 분야가 아닌 전 분야에 걸쳐 인력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 문제는 전체 산업기술인력 중 고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운 43.9%로 가장 높다는 점이다.

고졸 산업인력 비중이 높은 만큼 고졸 부족 인력은 1만6190명으로 학력별 부족 인원 가운데 가장 많다. 전문대졸 부족인력(5563명)보다 3배나 많다.

산업 현장에서 고졸 인력 비중이 높은 만큼 이들이 해야 할 역할 또한 크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일해야 할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 특성화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선호도는 낮다.

충북도교육청이 올해 도내 중학교 3학년 학생 1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고교 진학 희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반고 진학희망 비율은 83.7%로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특성화고는 10.8%로 가장 낮은 선호도를 나타냈다. 학생들이 특성화고 진학을 기피하면서 충북 도내 특성화고 수는 2011년 29개교에서 2021년 24개교로, 학급수는 605학급에서 484학급으로 각각 줄었다.

신입생 미달 사태가 벌어지니 특성화고들은 자구책으로 교명도, 학과도 수시로 변경해보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부모에게`특송합니다'(특성화고를 다녀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고 산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해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서러움에 대학 진학을 하게 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는 기술 강국만 외친다.

특성화고에 근무하는 지인은 유럽 연수를 다녀와서 우리나라와 유럽의 직업학교에 대한 인식 차이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덴마크, 독일 직업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국방문단의 단골 질문은“특성화고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 간 차별이 있느냐?”였다. 현지 교사들은 한국방문단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한국 방문단은 유럽의 3무(직업에 귀천이 없고, 학력이 없고, 학벌이 없음)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씁쓸한 일화가 남긴 숙제를 우리는 풀어야 한다.

`기술'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사라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신기루가 아니다. 단조(鍛造·금속을 두들기거나 눌러서 도구를 만드는 일) 분야 첫 대한민국 칼 명장인 주용부씨는 이런 말을 했다.“칼 한 자루를 만드는 데 1000번의 담금질과 연마질이 필요해요. 고되지 않으냐고요? 칼날은 공들인 만큼 보답해요.”라고. 정부가 특성화고에 공들인 게 없는 데 기술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욕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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