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은행원→교사→학원장→간호사 `카멜레온 인생'
회사원→은행원→교사→학원장→간호사 `카멜레온 인생'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2.06.27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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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효성병원 63세 남자 간호사 권수길씨
“책 읽고 공부가 좋아 늘 새로운 일에 도전”
고관절 수술 팔순 노모 간호 위해 인생 5막

은행원에서 교사, 학원 원장, 겸임교수, 간호사, 강사 등 다채로운 직업으로 다양한 인생을 사는 이가 있다. 효성병원 간호사 권수길씨(63)다.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그가 졸업한 정규 대학도 4곳이고 대학원까지 포함하면 6곳이다. 자격증도 교사, 간호사 심리상담사 등 9개나 소지하고 있다.

이처럼 고학력, 고스팩을 자랑하는 그는 현재 간호사이자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한 가지 일에 전념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의 직업군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생 2막을 시작할 나이에 인생 5막 언저리에 서 있는 그에게 어떤 삶의 과정이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책 보고 공부하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공부하는게 재미있고요. 직업을 여러 개 갖게 된 데는 반골기질도 한 몫 한 것 같아요. 절차를 중요시하고 타협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보니. 허허~. 돌아보면 다양한 직업을 가지면서 여러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씨가 첫 직장인 코오롱기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몸 담았다가 이직한 직장만 해도 5개가 넘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코오롱기업에 잠시 근무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싶어 은행으로 옮겼어요. 무역금융을 담당하던 자리였는데 당시에는 대출 관련해 편법도 많았어요. 저는 절차를 밟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성격이라 많이 부딪혔죠. 7년 정도 근무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퇴사했어요. 교육자가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충북대 사범대학을 다녔어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대학생이 된 그는 수업을 마치면 아르바이트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 목표를 위해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1995년 처음으로 교단에 섰어요.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전교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전교조 활동은 교육계에 거센 바람이기도 했지만 권위적인 교육계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어요. 학생들을 위해 교육환경을 바꾸자는 활동을 치열하게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지더라고요. 7년 만에 사표를 냈어요.”

교단을 떠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영어학원을 열었고 상지대학교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영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학원이 명성을 얻으며 유명강사가 됐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하지만 보장된 직을 미련없이 내려놓은 건 아내의 말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가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더 이상 학원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무렵 우환이 생겼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82살의 노모께서 넘어져 고관절을 다치셨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장기입원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홀로 병상에 누워 간호를 받게 되신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을 본 김 씨는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모의 병구완을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2015년이었죠.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직접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 자격증을 따고 4년 가까이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자 간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젊은이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할 일은 많아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하는 일을 2~3년은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적성이란 것은 때론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앞서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을 닦아놓아야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죠. 자신을 믿고 끈기 있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김씨는 가끔 젊은 의료인들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단다. 그 나이에 왜 간호사를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김 씨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네. 제가 좀 부족하거든요.” 말을 마친 그의 얼굴에 알듯 모를 듯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연지민기자

annay2@@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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