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신문사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2.06.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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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한자가 많이 들어 있는 신문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 늘 곁에 두고 보는 날이 많았다. 신문기사와 광고까지 모두 읽으면 서너 시간이 꿈같이 흘러갔고 그 내용을 종이에 쓰노라면 세상공부가 저절로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날들이 엊그제 같은 시절 신문은 곧 나의 친구였고 길잡이였다.

오월 봄날, 신문사 제작부서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처음 만나는 직원들에게 무어라 할 말이 없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만 드리고 돌아왔다. 그 이튿날도, 사흘째 되는 날에도 똑같이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부장인듯한 이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인사드린 보람이 있었는지 어느 날 신문사 직원 한 사람이 신문사에 가보라고 했다. 신문사에 갔더니 공장장이 신문 대여섯 가지를 책상에 올려놓고 거의 한자로 된 기사제목을 읽어보라고 했다. 한자를 빠짐없이 읽자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할 일은 취재와 편집에 이어 활자가 채집되고 구성된 다음 단계인 틀리고 빠진 글자를 바로잡는 작업이었다.

교열부서에서 표시해준 대로 고치는 일이어서 어렵거나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1면 기자석 기사 중 `박 대통령'을 `박대령통'으로 바뀌어 편집국에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평소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인한 대가는 컸다. 1호봉 감봉에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것 같은 불안 속에 떠는 날이 이어졌다. 세월이 가면서 불안은 사라졌지만, 그날 틀린 글자를 바로잡으면서 옆줄의 다른 글자를 건드린 게 원인이었다.

좋은 일도 많았다. 신문발행면수가 4면이어서 오랜 시간 작업하는 일이 없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2시간여 일하고, 한나절이 지나면 퇴근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져 갔고, 어른들 속에서 성실과 노력의 인성을 키워갔다. 하는 일이 세련되어지면서 다양한 뉴스보도에 대한 중요성에 비추어 책임감은 더해졌다. 일에 대한 흥미 또한 즐거웠다.

하루 중의 내 시간이 많아 이곳저곳으로 걸어다니는 또 하나의 취미로 도시의 삶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또 다른 기쁨도 컸다. 신문사 창간 기념일 때에 모범사원 상을 받았다.

신문사가 부서는 몇 개 안되면서 직원은 많아 승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차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발표에 한동안 어리둥절한 영광도 누렸다.

신문사 근무 10여 년이 훨씬 지나면서 더욱 발전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면 평생직장으로써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지난날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히 잊혀갔고, 이대로 밝은 날들이 이어질 것으로 믿었다. 가진 것이라곤 두려움밖에 없었던 촌뜨기 소년에서 이만큼 성장한 것만도 과분하다고 여겼다. 비바람 부는 추운 길을 걷다가 따뜻한 온기에 몸을 녹이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듯 즐거운 미소를 짓는 날이 많아졌고, 혼자 있을 때는 콧노래를 부르며 짐짓 행복한 척 하기도 했다.

신문사에 첫 출근하던 날, 글자가 틀려 극심한 고통으로 힘들었던 날, 승진의 기쁨을 누렸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내 인생의 젊은 날을 장식한 신문사는 그렇게 오래 내 안에서 기억되고 추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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