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듣고 싶다
고백을 듣고 싶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6.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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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그가 검찰총장 재임 중 남긴 말 가운데 가장 큰 파장과 논란을 낳았던 말로 꼽힌다.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의 검찰 지휘권 행사에 반대하며 한 발언이다.

추 장관은 즉각 “검찰총장은 법상 법무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하는 공무원”이라고 반박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8조를 든 것이다. 추 장관은 이 명확한 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정치인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으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검찰총장의 법리적 반론에 판정패를 당했다.

여론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다 견제를 받는 모양새가 된 검찰총장에게로 기울었다. 추 장관은 자신의 지휘권을 검찰청법이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국민이 그 권한에는 제한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검찰청법은 법무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고 선을 긋는다. 장관이 검찰총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수사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한 것이다.

또 검찰청법 34조는 장관이 검사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2019년 총장 취임 후 첫 인사를 자신의 뜻대로 관철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총장은 임명권자가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장관과 달리 2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시켜 수사에 어떠한 외압도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당시 검찰총장의 소신은 이런 수사기구 총책에 대한 법률적 배려와 그 취지에 기반했을 터이다.

상하가 엄연한 직제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의 부하되기를 거부했던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 대통령은 지금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그 때 그 소신이 변치않았느냐는 날 선 질문에 봉착해 있다. 우선 검찰총장 자리가 두달 가까이 공석이다. 두 차례 검찰 인사는 보수 언론까지 혀를 찬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법적 절차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지적을 받는다. 법무부는 총장 대행인 차장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지만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차장이 체급이 까마득한 장관과 마주앉아 인사를 논할 수 있겠는가. 검찰이 통째로 한동훈 법무장관의 직할체제로 들어갔다는 지적에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무부는 아직 검찰총장 추천위조차도 꾸리지 못하고 있다. 법치를 누누이 강조한 대통령이 임기와 권한을 법으로 규정한 검찰총장의 공석을 장기간 방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야권으로부터 대통령이 청와대 지시도 먹히지 않는 제2의 윤석열 총장이 등장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듣는 판국에서 말이다.

행정안전부에 경찰을 통제할 조직을 신설하려는 시도 역시 수사기구의 정치적 중립을 외쳐온 대통령의 과거 소신과 배치된다. 경찰청이 1991년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에서 외청으로 독립한 것은 경찰이 더 이상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여망에서 비롯됐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양대 수사기관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모습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통령은 변명이 아니라 고백을 해야 한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고 했던 소신이 사실상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직하는 역설적 상황으로 변질된 사유에 대해 말이다. 장관의 부당한 지휘에 정면으로 맞섰던 그 장면에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확신하고 조건없이 지지했던 시민들은 기만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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