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끝으로 문화재를 그려낼 수 있다면
당신의 손끝으로 문화재를 그려낼 수 있다면
  • 나윤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 연구원
  • 승인 2022.06.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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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나윤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 연구원
나윤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 연구원

 

저는 비장애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문화재를 눈으로 보았고, 때로는 그 웅장함에 놀라 감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껏 멋들어지게 만들어놓은 저 커다란 문화재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니, 그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들도 저와 같았나 봅니다.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신이 나서 문화재를 구경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면 진행자로서 참 뿌듯했습니다. 문화유산 활용가에게, 누군가가 문화유산을 즐기는 모습을 두 눈앞에서 본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 직업에 대한 사명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전, 늘, `내가 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그 생각이 와장창 깨져버렸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유산 교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입니다. 처음엔 여러 질감을 활용하여, 올록볼록한 점들을 활용하여 문화재를 예쁘게 그려낼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시각장애인들의 머릿속에도 제가 본 그 웅장한 문화재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 시각장애인용 문화유산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참고하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에 저희는 이 책을 들고 맹학교 선생님에게 자문을 받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외관이 예쁜 저 책은 비장애인의 눈에는 한없이 예쁠지언정, 시각장애인에게는 그저 종이일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생김새에 대한 자세한 묘사, 그리고 종이 위 점선으로 그려낸 문화재 일부분이 아닌, 전체의 모습을 축소하여 직접 만질 수 있는 모형 등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코끼리의 코만 만져서는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었는데, 우리는 이를 간과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손길 하나만으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문화재를 그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눈을 감고 만져보며 최대한 그들이 편하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문화유산 책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문화유산을 남겨주었을 때에는 분명, `누구는 보고 누구는 보지 말라고, 또 누구는 듣고 누구는 듣지 말라고' 생각하며 남겨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 활용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비장애인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문화유산 향유'에서 배척되고, 그 기회조차 거머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부터 달라져 볼까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어떤 여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도록.

물론 사람은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긴 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연구원의 이러한 시행착오들 덕분에 `누구 하나 빠짐없이 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는 세상'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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