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
포화 속으로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6.2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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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비행기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비행운이 길게 그 뒤를 따라가며 하늘에 선명하게 하얀 길을 낸다. 이윽고 서서히 흐려진 길은 지워지고 흔적도 없다. 마치 걱정을 지우라 말해주는 것 같다. 언제까지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아들을 따라나서려던 내 마음이 주춤한다.

미래의 꿈을 꾸면서부터 아들은 우리 곁을 떠났다. 십대 중반부터 쭉 떨어져 산 이유는 공부였다. 충주로 고등학교에 가면서 처음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어쩌다 기숙사에서 오면 이때부터 손님이었다. 거기서 굶은 것도 아닐 텐데 신이 나서 잔칫상을 차리듯 음식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온 집이 편하고 마음이 쉬어갔으면 했다.

첫 학기에는 많이 긴장돼 보였다. 수학 정석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하는 녀석들에게 주눅이 드는가 보았다. 도시 아이들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그들과 겨루어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 치여서 쓰러지고 좌절하면서도 일어나야만 하는 전쟁터임을 눈빛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3년이 그를 서울로 향하게 했다. 박사가 되던 날, 죽기 살기로 한 공부였다는 말에 얼마나 짠하던지. 누가 강요한 일이라면 포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로서 말없이 스스로 한 선택을 믿어주길 잘했다.

이제 아들은 다시 또 멀리 떠난다. 이제 비행기로 두 나절을 가야 하는 곳이니 정말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실감이 난다. 내 마음이 복잡하다. 기쁘고 감사할 일이 한편으로는 서운해진다. 집에 자주 오지 않는 것을 두고 우스개로 한 해외동포가 현실이 되었다.

미국, 거기는 넓디넓은 나라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문화도 다르고 말도 틀린 이국이기에 벌써부터 별걱정이 앞선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인종차별이다. 이유 없이 자기들과 다르다고 횡포를 부리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그곳에서 적응하기까지 뿌리를 내리려 몸살을 앓을 것이다. 얼마나 자신을 담금질해댈 것인가.

공부는 거문고 줄 타듯이 하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는 줄을 지나치게 조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서도 안 된다. 적당히 맞추어져야 한다. 뜯는 것도 아주 알맞게 해야 고운 소리가 난다. 욕심을 부리면 줄이 끊어짐을 이즈음에는 알 것이다. 한 번도 외도하지 않고 걸어온 길이다. 그러니 인내가 필요한 수행임을 알 터이다.

우리 부부는 공항에 배웅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학회를 보낼 때처럼 포닥 과정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자는 게 그이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속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조절이 되지 않는 내 눈물바람을 염려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낼 자신이 없다. 가기 전에 함께하는 여행길에서 한껏 나누리라. 작별인사를 내 마음의 온도로 전할 생각이다.

처음, 나를 떠날 때처럼 전장에 내보내는 기분이다. 찔리고 베이는 상처로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곳, 목표를 위해서 나아가야 하고 충동과 맞서야 하는 싸움터, 거기서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한다. 여기저기서 포격이 터져 늘 긴장해야 하는 전쟁터. 그 포화(砲火)속으로 아들을 보낸다.

6월의 불꽃이 날아와 능소화를 피운다. 화르르 농막에 등을 밝힌다. 한순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별의 시간이 오면 낙화하여 땅 위에서 시들어 버리는 꽃은, 가장 아름다운 자세로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환하게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법을 꽃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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