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가 없는 날
조용한, 새가 없는 날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2.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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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눈이 마주쳤다. 잔뜩 긴장했는지 도망도 치지 못하고 화분 틈바구니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쏜살같이 줄행랑인데, 이 녀석은 포기를 한 건지 오금을 못 펴고, 똘망똘망 눈망울을 던진다. 요 녀석 봐라! 좀 전까지 덤불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녀석 맞아? 길냥이 새끼의 눈망울에 사로잡혀 정지화면이다. 서로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주변 빈집도 많은데, 굳이 여기인 이유가 뭔지? 비를 피하기도 마땅치 않고, 화초를 가꾸느라 빈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신경이 여간 쓰이지 않을 텐데? 새끼를 출산했을 때 혹시 새끼가 걸릴까 염려가 되어 오이 그물도 치지 못했는데, 기우였다. 화분 사이로 작물 사이로 잘도 빠져 다닌다. 물론 너무 게걸스럽게 진수성찬을 싹쓸이하는 먹성 덕분인지, 부쩍 자라 잘 자란 토마토를 부러트리고, 씨를 뿌린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이것저것 안 건드리는 거 없이 시끌벅적한 녀석들, 하루도 조용할 새가 없다. 그러건 말건 커가는 모습이 좋다.

아침부터 까칠한 녀석의 사나운 경계 소리다. 휴대폰에 설정해 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웬 소란인지? 분명 엄마 길냥이의 출현일 듯, 양육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었으니 새벽부터 사냥(?)인 듯하다. 다른 까치처럼 다른 곳에 집을 지으면 될 것을 매년 같은 자리에 증축하고 있으니, 동네 길량이들의 표적이 된 듯하다. 고양이의 접근을 막기 위해 두 마리의 까치가 돌진하고 고성을 질러댄다. 주변에 큰 나무가 많으니 까치집이 많다. 그러니 늘 고양이와의 실랑이가 잦아들 날이 없다. 주변에 먹거리가 지천이라 굳이 나무에 오를 일이 없는데, 그냥 지나는 길인데, 괜스레 유난을 떤다. 몸집도 크니 소리도 고막이 피곤할 정도다. 늘 자기가 최고라고 떠벌리는 새다.

촉새(?)처럼 꼬리를 흔들며, 가지에 앉았다. 입에 벌레를 물고 있는듯한데 자칫하면 떨어트릴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휙 하니, 자취를 감췄다. 이내 처마 밑이 시끄럽다. 푸드덕 날갯짓 소리가 번잡스럽다. 분명 알이 깨도 한참 되었을 거고, 떠날 시기가 지났을 텐데, 벌레를 물고 들어가는 시간 때면 늘 어수선하다. 한두 마리가 아닌 듯 우당탕 집기라도 던지는 건지 별별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몸집은 작은데 매년 집들이는 부산스럽다. 얼마간의 소란이 끝나고 어미 새가 나왔다.

그리고 물로 직진이다. 벌레를 물고 들어갈 때와는 다른, 눈치 보기가 없이 전광석화다. 가장 낮은 가장 넓은 돌그릇에 몸을 집어넣고 작은 날개를 홰치듯 펴고 물장구를 친다. 주변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새소리는 이쁜데 하는 짓은 정신 사납다.

문짝만 한 커다랗고 나직하게 놓인 돌판에 움푹하게 채워진 물은 딱새, 박새나 곤줄박이가 목욕하는 곳이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돌확에 채워진 물은 길냥이의 마실 물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돌절구의 물로 직박구리와 멧비둘기가 수시로 목을 축인다. 물이 탁해지기 전에 신경 써서 갈아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우물을 길어 채워주는 물을 고대하며 온갖 새들과 동네 길량이들이 뜰을 찾는다. 뜰 안의 나뭇가지는 물을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자리를 뜨면서 똥도 시원하게 갈기는데 안성맞춤이다.

새벽 동이 트면서 부스럭거리며 적당하게 소란스러운, 그러나 맑은 새소리, 수업종료를 알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오후가 되면서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녹음이 짙어지며 풀벌레 소리, 지렁이, 땅강아지 울음소리가 주변에 채워질 것인데, 이젠 애써 집중해서 들어야 할 일이다. 그나마 인기척을 감지하면 소리를 내지 않는 녀석들인데. 작고 대수롭지 않은 많은 것이 함께하고 있음에 조화로운 곳에, 큰 것일수록 많은 것을 가진 것일수록 내는 소리가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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