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부 박근혜의 승리
여장부 박근혜의 승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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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덕 현 <편집국장>

이명박의 승리로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지만 오히려 당의 고민은 지금부터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후보를 따라 그동안 갈기 갈기 찢겼던 당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난제거니와, 앞으로는 '여권'이라는 적수를 상대로 그야말로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에 전장(戰場)의 개념부터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당내 경선이 마이너리그라면 향후 치러질 본선은 메이저리그에 해당된다.

썩어도 준치라고 비록 여권이 아직 헤매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득권을 차고 있는 집권세력의 저력은 어떤 식으로도 반드시 나타난다. 한나라당이 연거푸 두 번이나 대권의 9부능선에서 좌절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외형의 여권을 우습게 보고 자만한 데 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자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정치가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어찌보면 쟁취하는 것보다 내놓거나 빼앗기기가 더 어려운 게 정권이다. 97년 반세기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다행히 패자인 박근혜 후보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경선결과에 승복할 것을 선언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에 또 한걸음 진일보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경선결과에 승복한 박근혜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 정당사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또 하나 만들어진다. 특정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경선을 펼치고 또 그 결과에 승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나라당 경선은 지난 1년간 워낙 혈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패자측의 상실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자신의 지지자를 향하여 "당장은 잊지 못해도 하루가 가고 한달이 지나면서 잊도록 하자"며 오히려 패자의 금도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평소 원칙에 충실한 본인의 정치적 캐릭터를 국민들에게 가장 실감나게 입증해 준 것이다.

사실 대선에 있어 우리나라의 경선 역사는 짧지만 되레 국민들은 경선 불복에 대해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불복할 경우 냉정한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97년 경선을 한 번 뒤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9룡(龍)으로 상징되던 이회창 이홍구 이인제 박찬종 이수성 최형우 김윤환 김덕룡 이한동 중 경선에 불복한 6명의 현주소가 경선불복에 대한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을 그대로 시사한다. 불복한 인사들은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출중하든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정계의 야인으로 헤매고 있거나 아예 은퇴해 버렸다. 고시 3관왕인 박찬종처럼 이들중엔 만약 시험을 봐서 대통령을 뽑을 경우 누구보다도 이 자리를 꿰찰 수 있는 특출한 실력과 자질을 갖췄는데도 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앞으로 패자 박근혜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가지다. 이미 승복을 천명했기 때문에 정말 백의종군하며 이명박을 돕거나, 아니면 당에 남아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워낙 근소한 차로 승부가 갈린 상황이라 이명박의 본선지지도가 떨어질 경우 언제든지 박근혜가 대타로 부각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말이다.

실제 인간 노무현은 선거에서 여러번 떨어졌기 때문에 오늘의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지역구를 옮겨 가며 낙선할 때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들을 정도로 지난한 길을 걸으면서도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 국민들에게 오히려 높이 평가된 것이다.

어쨌든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는 비록 패하고서도 승자가 됐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를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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