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남긴 이야기 기억하는 방법
세월이 남긴 이야기 기억하는 방법
  •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2.06.19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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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선-땅과 사람들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최근에 오랫동안 타고 다녔던 자동차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도장은 색이 바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으며, 시동을 걸면 엄청나게 커져버린 소음과 진동이 신경을 긁는다.

필자는 본인의 물건을 꽤나 아껴 쓰는 편이다. 어지간해서는 망가뜨리거나 더러워지게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이란 시간이 지나면 상하게 마련이고, 원래의 성능을 잃고 의도치 않은 고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아끼던 물건이 고장 나거나 부서져서 수리를 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 물건이 이전에 새 것이었던 때처럼 말끔해지길 원할 것이다.

부서진 부분이 감쪽같이 붙길 바라고, 더러운 때가 탔다면 깨끗하게 지워지길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흔적들이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유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유물을 새 것처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망가지고, 녹슬고, 바래거나 변형된 모든 형태는 그 유물이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이미 그 재질과 성질이 변해버린 것을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새 것과 같이 만들 수 있다 해도 그러한 복원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흔히 `고색'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먼지하나 상처하나 없이 반짝반짝한 물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물론 잘 보존된 매끈한 도자기 같은 것들이 가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월의 흔적이 묻은 것은 그것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지 고색을 내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서졌다면 부서진 연유가 있을 것이고, 무언가 묻어 있다면 묻게 된 과정이 있는 것이다.

못에 붙은 나무는 못을 나무에 박았던 사실을 알려주고, 한 쪽이 닳아버린 숟가락은 숟가락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했는지를 알려준다.

요컨대, 유물에 남아 있는 모든 흔적들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물건 그 자체보다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가 더 큰 가치를 갖는다.

똑같은 종류의 물건일지라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는 전혀 달라질 수 있으며, 그 물건이 관련된 사건이나 관계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정보가 되거나,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여 사진, 영상 등으로 명료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지만, 그러한 기록을 남길 수 없던 시대에서는 관련되었던 물건들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기록이 된다.

그렇기에 물건 자체뿐만 아니라, 거기에 남아 있는 모든 흔적 또한 유의미해지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자동차는 고장이 나면 새 것과 같이 고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용도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항상 깨끗하고 좋은 성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전하는 나를 열심히 실어다 주고 안전하게 보호해 줬던 시간의 흔적으로 기억해 본다면, 더럽고 시끄러워진 자동차가 조금은 고맙고 안쓰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나에게 지난 이야기를 기억하게 해주는 감사한 시간의 흔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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